금요포커스-'술'에 너그러운 국회

"담배처럼 술병에 경고사진·광고 제한" 법안 계류

2019-06-07 11:15:44 게재

음주운전 경고 문구추가도 19대 실패, 20대 난항

정부·업계 반발 … 주취 범죄·음주사고 비판과 역방향

원내대표 '호프 회동'·세율 인하 등 호의적

국회가 '담배'에 비해 '술'에 관대한 편이다. 술이 더 대중적이고 '낮은 도수의 술 정도는 인간관계에 유용하다'는 해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일까.

이명박정부가 죄악세(Sin Tax)로 불리는 담배와 술의 세율(세금) 상향조정을 검토했다가 포기했고 박근혜정부는 술을 제외한 담배의 세율만 올렸다. 지난 4일엔 오히려 생맥주세율을 한시적으로 20% 낮추고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는 방안이 당정회의에서 합의돼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될 전망이다.

담배갑에는 폐암 등을 경고하는 그림과 문구가 강렬하게 나오지만 술병에는 음주를 부추기는 모델의 사진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

호프회동 |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의 한 호프집에서 맥주회동을 갖고 있다. 국회사진 취재단


7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야당이었던 강동원 의원은 음주운전 등 주류 경고문구의 법률화를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강 의원과 최민희 의원은 청소년 보호를 위해 주류 광고를 제한하는 매체수단을 늘리고 주류광고 시간을 제한해야 한다고 내용도 법안에 넣었다. 또 최 의원은 미성년자 등급 영화 상영 전후에 주류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강력한 야당의원 법안 찬밥신세 = 강 의원은 19대 국회 임기초반인 2013년 7월17일에 발의했으나 상정된 것은 2년여 지난 2015년 11월 9일이었다. 최 의원 법안도 2015년 1월 29일에 발의했지만 상정된 건 10개월정도 지난 이후였다. 두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은 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임기말 폐기'됐다.

다만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신경림 의원이 뒤늦게 2015년 5월 1일에 제안한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주류의 판매용기에 임신 중 음주가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문구를 넣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야당 소속의 강 의원과 최 의원의 법안과 같이 11월 9일에 동시 상정됐지만 신 의원의 법안만 17일만에 법안소위, 전체회의를 넘어섰다. 본회의 통과일은 임기말 직전 본회의인 2016년 2월 4일이었다. 당시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 검토보고서를 보면 보건복지부 등 정부측에서는 찬성입장, 업계와 방송통신위에서는 '과도한 규제'를 주장하며 반대입장을 보였다. 국회는 업계쪽 의견을 주로 반영한 셈이다.

20대 국회 들어서도 여당의 이춘석 의원이 2017년 3월 17일에 "음주 후의 운전으로 인한 인명사고의 발생이 잦고 그 개인적, 사회적 폐해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내용은 경고문구에 포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주류의 판매용 용기에 표기하는 음주 경고문구에 '음주 후 운전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내용을 넣도록 하는 법률개정안을 제출했다. 보건복지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임인 중 음주 경고를 포함한) 2016년 9월 3일 수정된 경고문구가 정착된 후 정책 효과 등을 고려해 경고문구 추가 여부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복지부), "제품 포장의 경고문구를 추가할 경우 표시내용 면적이 넓어져 포장의 디자인 측면에서 애로가 있으며 업체 기존 포장 소진시기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농림부)며 반대입장을 제시했다.

◆더 강력한 업계 반발 =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주류수입협회는 "주류 표기가 자주 변경되는 경우 기업에서는 보유 중인 상표를 수시로 폐기하는 등 이에 따른 관리비용 및 자원낭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법안은 지난 같은해 8월 23일에 소위로 넘겨졌지만 1년 10개월여동안 단 한번도 법안소위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의 이만희 의원(2018년11월28일)과 여당의 김민기 의원(2018년12월7일)은 각각 음주경고 그림을 넣는 방안과 주류 광고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담은 법안을 제안했다. 핵심은 '담배 규제와 같이 하라'는 주문이었다.

김 의원은 "담배갑 포장지에 흡연의 폐해를 나타내는 내용의 경고그림을 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류의 판매용 용기에 경고문구뿐만 아니라 음주운전의 폐해를 나타내는 경고문구와 경고그림을 표기하도록 해 음주운전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폐해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주류에 관한 광고의 규제수준을 현행 담배에 관한 광고의 규제와 유사한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내용을 새롭게 넣고 주류 판매용 용기에 음주의 폐해를 나타내는 경고그림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정한 경우 이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광고규제'를 채택하고 있는 주류 광고를 담배와 같이 특정한 경우에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광고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흡연 사회적 비용 5조, 음주 사회적 비용 18조 = 복지부는 "경고그림이 음주폐해를 알리는 시각적 효과가 클 수 있어 도입 필요성이 있다"며 "주류용 용기에 부착하는 라벨에 식품위생 관련 필수 기재정보가 많은 상황을 고려하여 경고문구와 경고그림을 선택하여 표기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수정 제시했다.

박종희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입법취지는 타당하다"면서도 음주운전 경고문구 추가의 경우에 발생할 가독성 감소와 경고효과 감소, 라벨 디자인 및 생산비용 상승 가능성을 고려대상으로 언급했다. '술' 수준의 규제에는 반대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 법안들의 통과 전망은 밝지 않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제대로 열리기 어렵고 이익단체의 강한 요구를 이겨내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 역시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정상화 논의를 술자리에서 진행하는 등 '술=화합'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주취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고 윤창호법 등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는 것과 주류에 대한 규제가 반대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편 지난 2009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 흡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5조6398억원인데 반해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18조6057억원에 달했다.

흡연은 자신과 타인의 건강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음주는 가정폭력, 성폭력, 음주운전 등 중대한 범죄를 일으켜 간접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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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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