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투자 상용화 연계 부족했다

2019-09-10 11:49:28 게재

수요·공급 협력 필수

핵심분야 장기투자 해야

서울 성수동에 소재한 볼트크리에이션은 중소형 OLED를 생산하는데 핵심 부품인 섀도마스크(파인메탈마스크, FMM)를 개발했다. 섀도마스크는 OLED를 제작할 때 고온 증착기에서 기화시킨 유기물을 통과시켜 화소를 만드는 금속판이다. 종이 두께보다 얇은 금속판에 미세구멍을 뚫어 만들어진다. 고정밀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본 다이니포프린팅(DNP)과 토판프린팅(TOPPAN)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볼트크리에션은 2015년 8월 창업한 후 FMM 개발과정에서 50억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했다. 포스코 등 민간투자도 있었지만 정부 R&D 자금도 50% 정도 들어갔다. 하지만 이 업체는 다음달 국내 기업이 아닌 중국 OLED 기업인 비전옥스와 공급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중소기업 H사는 최근 로봇 부품 '유성기어 감속장치'(감속기) 개발에 성공했다. 2016년 9월 정부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제품개발에 뛰어든 지 3년만의 성과다. 감속기는 로봇의 팔다리에 적용되는 일종의 '관절'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으로 일본 하모닉드라이브사가 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H사는 감속기 개발에 성공했지만 판로는 아직 찾지 못했다. 판로를 찾지 못한다면 3년여의 노력과 정부 지원금 4억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일본의 경제도발을 계기로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연구개발투자(R&D) 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소재 부품업계와 전문가들을 이 같은 정부의 R&D 투자 소식을 반기면서도 20여년 동안 이어진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끝날 가능성을 우려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에도 소재부품에 상당한 규모로 R&D 투자를 진행해 왔다. 2001년 소재부품특별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R&D에 5조4000억원을 투입해 생산은 3배, 수출은 5배 이상 성장하는 외형적 성과를 기록했다. 최근에도 정부 R&D 예산의 5% 정도를 소재부품 분야에 투입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9520억원을 소재부품 R&D에 투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소재부품산업의 경쟁력은 회복되지 않았고 일본의 도발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의 정부 R&D 과제 성공률은 96%에 달하지만 이를 실제 제품으로 연결하는 사업화 실적은 46%에 불과하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 같은 R&D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산업 핵심분야에 대한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투자와 수요연계형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화학소재분야 중소기업 대표는 "예산 쪼개기나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기술 난이도가 낮은 범용제품 위주로 국산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며 "1~2개 품목이라도 장기간 기술개발을 요하는 핵심 소재·부품에 집중해야 일본 기업과 경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재 볼트크리에이션 이사는 "세계 OLED시장을 국내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기존 거래처와의 관계 때문에 신규 부품사와의 계약에 상당히 보수적"이라며 "정부 R&D 자금을 들여 기술을 개발한 만큼 국내업체와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 R&D 투자 효율성 제고와는 별도로 소재부품산업을 키우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소재산업은 R&D 투자 및 연구인력 등에서 산업 평균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를 보유한 소재분야 기업은 3479개사로 부품산업(1만5859개사)의 1/5 수준에 불과했다. 소재산업의 기업 당 평균 연구개발비는 12억원으로 전산업(15억원)에 비해 낮았으며, 매출액대비 R&D투자액도 2.05%로 전산업(3.32%)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서도 소재 생산기업 5곳 중 3곳 꼴로 일본 기업의 R&D가 한국보다 많았고 부품 업체의 평균 R&D 지출액은 한일 기업이 서로 비슷했다. 소재부문에서는 일본 기업의 평균 R&D 지출액이 한국 기업의 1.6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부품소재정책 ‘일관성 부족’이 불신 키워
[소재부품 기술독립 이번엔 제대로│① 한국 경쟁력 현주소는] 국제공급망 흔들리고 '가마우지'경제 여전
소재부품장비 대일적자 10년간 290조원
[소재부품 기술독립 이번엔 제대로│① 한국 경쟁력 현주소는] 20년간 정책 단절 … 핵심기술 난망
[인터뷰│이덕근 한국기술거래사회 부회장] "국산화, 중위권 소재기술 개발부터"
소재 경쟁력 위해 해외투자 협의체 출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로 제조강국 재도약"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 출범

[소재부품 기술독립 이번엔 제대로] 연재기사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고성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