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와 금융회사 본격화되는 경쟁 | ① 바뀌는 금융시장 지도

"금융상품 제조·판매 분리, 은행들 경험하지 못한 시대 도래"

2020-12-11 12:29:17 게재

빅테크, 금융권 전체로 상품판매 영역 확대 … "금융회사, 플랫폼 경쟁에서 이미 뒤쳐져 있는 상황"

"상거래 중심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빅테크 회사들이 금융상품 판매를 확대하고 있어 앞으로 상품의 제조·판매 분리가 벌어진다. 금융상품을 제조·판매 해온 은행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가 도래한다."

"그동안 은행들이 사거리 길목을 지키면서 고객을 확보했다면, 지금은 빅테크기업이 모바일 길목을 지키면서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은행들이 집토끼(기존 고객)는 잘 지키지만, 산토끼(신규 고객)를 데려오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11일 금융혁신 분야의 핀테크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금융시장의 대대적인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카카오는 2017년 7월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를 출범한 이후 3년 만에 카카오페이증권을 설립하고 온라인 종합보험사 추진 등 증권·보험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연말까지 사모펀드 2곳과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내년에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올해 안에 주관사 선정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증권가에서 추산하는 카카오뱅크의 기업가치는 최대 20조원 안팎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가총액이 19조3000억원 규모인 KB금융에 맞먹는 규모다.


◆경계가 사라지는 은행 = 카카오뱅크는 최근 출시한 '카카오 미니'를 통해 청소년 고객 확대에 나섰다. 청소년은 은행에서 계좌개설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계좌가 아닌 선불전자지급수단을 만들었다. 만 14세부터 만 18세 이하 청소년만 개설할 수 있고 은행 계좌 개설이나 연결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보관할 수 있는 금액한도는 50만원, 1일 이용한도는 30만원이지만 1개월 이용한도는 200만원이다. 계좌는 아니지만 은행의 체크카드처럼 ATM기기를 통해 현금을 인출할 수 있고, 가맹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교통카드 기능도 포함돼 있다. 가입자는 상품출시 한달 만에 50만명을 넘어서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은행 계좌가 아니지만 사실상 계좌처럼 이용할 수 있는 카카오 미니는 은행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보스톤 컨설팅의 김윤주 파트너는 최근 '은행은 여전히 특별한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토스는 현재 은행이 아니지만 저희가 최근 대학생들에게 물어봤을 때 토스가 은행이라고 이미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유는 자기가 편한 금융서비스를 이미 토스를 통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파트너는 "마이데이터, 마이페이먼트, 종합지급결제가 묶였을 때 생길 수 있는 새로운 금융의 형태, 또는 은행 대리업체들이 가는 방향성을 보면 상당히 많은 사업자들이 은행과 유사하게 영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플랫폼 통한 고객 확대 = 빅테크들은 강력한 온라인 플랫폼을 토대로 금융업에 진출해 고객을 늘리고 있다. 카카오톡은 45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금융권 전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시장영향력 확대는 카카오톡과 연계한 모임통장·26주 적금 등 경쟁력 있는 상품과 온라인 대출 등 편의성을 통해 이뤄졌다. 카카오페이증권 역시 출시 9개월 만에 이용자수가 300만명을 넘어섰다. 3500만명이 이용 중인 카카오페이 플랫폼을 통한 성과다.

토스 역시 마찬가지다. 간편송금서비스를 통해 고객층을 확보했고 이후 계좌·신용정보 조회, P2P투자, 맞춤 대출 추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내년 인터넷전문은행과 토스증권을 출범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고객수를 고려하면 기존 금융회사들은 이미 플랫폼 경쟁력에서 빅테크에 뒤쳐져 있는 상황"이라며 "빅테크 주변을 기웃거려서 이삭줍기를 하든, 강력한 플랫폼을 만들어 각종 서비스를 실현하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빅테크들이 가장 진출하기 어려운 업권으로 보험을 꼽고 있다. 당초 카카오는 삼성화재와 협업을 통해 디지털 손해보험사 설립을 준비했지만 협상이 결렬되면서 독자적인 보험사 설립을 금융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카카오는 온라인 종합보험사를 출범하지만 향후 영업은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간단한 보험상품(단종보험)을 판매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업권 관계자는 "이자를 많이 주거나, 수수료를 낮춰서 고객을 끌어들이는 은행이나 증권과 달리 보험은 상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빅테크라고 해도 진입이 쉽지 않다"며 "종합보험사로 출발하더라도 일단은 가격이 싸고 단순한 상품을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급자 위주에서 고객 중심으로 바뀌는 금융권 = 금융회사들은 그동안 공급자 위주의 금융상품 판매방식을 고수했고, 은행들이 주요한 판매채널 역할을 담당했다. 사모펀드 판매규모가 은행을 통해 급격히 증가했고, 은행이 보험상품을 판매하면서 방카슈랑스 규모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빅테크의 등장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판매채널에서 힘을 잃을 수 있다. 강력한 판매망을 가진 빅테크로 인해 상품의 제조와 판매가 분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판매에 있어서 빅테크의 독점 또는 준독점적인 행위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소매금융 시장에서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는 경우 유력 판매사와의 관계가 돈독한 은행, 비용관리를 통해 소비자 친화적 조건을 제시하는 은행 등의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위원은 "미래의 은행은 24시간 제공이 가능한 비대면 채널을 통해 얼마나 경쟁력 있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 금융회사는 금융상품의 제조와 판매가 결합돼 있어서 그동안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며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금융상품을 판매해왔지만 기존 금융권이라는 견고한 벽이 새로운 기술로 허물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등 고객만족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금융회사는 앞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카카오뱅크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은행이 현재의 위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더 좋은 상품을 공급해서 선택을 받느냐 아니면 고객과의 접점부분을 더 잘하는 업체들에게 양보를 하고 그 업체와의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은행이 되느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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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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