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떠난 기초생활수급자 구 모씨

잡지 팔며 재기 꿈꿨지만 지병·생활고

2021-08-31 12:27:19 게재

수일 전 병원 갔지만 사망 예견 못 해

"코로나19로 대면 상담이 줄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의 생활을 파악하는게 더 힘들어졌어요. 예전 같으면 방문한 김에 냉장고도 열어보고 더 물어보고 했을 겁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담당하는 서울의 한 주민센터 담당자의 말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기초생활수급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이 여러 건 있었다.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지난 5월 24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추모공원에서 열린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 및 분향하고 있다. 사진 경기사진공동취재단


서울 강서구 화곡동 다세대 주택에서 발견된 45세 남성 구 모씨의 죽음도 그중 하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살던 구씨는 "냄새가 난다"는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이달 3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타살 혐의가 없고 극단적 선택의 흔적도 없는 점으로 보아 질병사(돌연사)로 추정하고 있다. 평소 질환을 앓던 구씨는 기초생활 맞춤형수급자로 생계와 의료, 주거급여 지원으로 월 68만원을 받고 있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평소 인근 전철역에 앉아 있는 걸 여러 번 봤다"면서 "기초수급자인 걸 알고 있어서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구씨는 생계비만 안 깎이게 해달라고 평소 이야기했다"면서 "기초생활대상자가 많아 인력이 부족한데다 코로나19로 대면접촉도 어려워져 그들의 생활을 촘촘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몸이 안 좋다고 느낀 구씨가 주검으로 발견되기 4일 전 동네 내과를 찾아 어지럽고 구토가 난다고 호소했다. 행색이 남루하고 냄새가 나는 그를 사람들은 피했지만 의사는 진료를 봐주었다.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하고 고지혈증 외에는 특이 소견이 없어 5일치 약을 처방해 줬다.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결과를 보러 오라고 했지만 구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죽기 직전 병원까지 갔지만 누구도 쓸쓸한 그의 죽음을 막지는 못 했다.

구씨는 지난 삶을 털고 재기해보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구씨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9년간 노숙인 잡지 판매원으로 일했다. 2013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구씨는 "가족이 많이 생각나죠. 가볼래야 가볼 수도 없고, 마음만 아플 뿐이죠. 잡지를 팔면서 나도 잘 곳이 생겼구나. 덕분에 임대주택에도 들어가고, 독자분들에게 감사하죠"라고 속마음을 밝히기도 했다.

2013년에는 노숙인 발레단 일원으로 서울발레시어터에서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사회와 조금씩 교류하며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2018년 잡지 판매원 일을 그만두면서 주변과 단절되어 갔다.

잡지 판매기관 관계자는 "판매를 계속했다면 매일 사무실을 찾아오고, 못 오는 경우 전화를 드리고 외로움 방지 프로그램으로 이것저것 지원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네에선 구씨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골목 슈퍼 주인이 "늘 막걸리와 담배만 사 갔다. 막걸리가 주식 같았다. 몇 달 전에는 아버지 산소에 갔다 온다는 말도 했다"며 그를 기억했다.

코로나로 막혔던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면 구씨는 죽지 않았을까. 주민센터 관계자는 "24시간 붙어 있을 수 없으니 생계 취약 가구의 상황을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면서 "우리 동에만 2만7000세대가 거주하는데 1인 가구가 50%에 이르고 기초수급자는 1800명이나 된다. 물리적으로 다 파악하기가 솔직히 어렵다"고 했다.

지방에서 소식을 듣고 올라온 구씨의 형과 친지 등 너댓 명은 빈소도 차리지 않고 부검을 마친 다음날 장례식장을 떠났다. 같은날 그 곳에는 연고 없는 시신 7구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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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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