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창간29주년 기획-'3고 위기' 기로에 선 대한민국, 길을 묻다 ㅣ ③현실화되는 장기 침체 대비하자

고에너지 산업구조 개혁하고 '경제적 재기' 시스템 강화해야

2022-10-19 11:17:15 게재

체질 전환 없이는 외부적인 충격 올 때마다 위기 반복

기후변화 등 전 세계적인 ESG 규제 강화 추세 대응

쓰려져도 일어설 수 있는 강력한 회생제도 구축 필요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소위 '3고' 현상으로 한국 경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8월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의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제2의 IMF와 금융위기를 우려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다. 경제 위기는 한계기업과 저소득층 등 가장 취약한 부문이 우선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다. 정부와 기업은 장기 불황에 대비하기 위한 구조 개혁을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편집자주>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경제·금융전문가들이 내년 심각한 경기 침체를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장기 불황에 대비해 한국 경제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중장기적인 산업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폴란드 카토비체 국제회의 센터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사전회의(PRECOP 27)'에서 유엔 글로벌 컴팩트(UN Global Compact)의 폴란드 대표인 카밀 뷔즈콥스키가 발언하고 있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를 앞두고 의제 점검 등을 위한 공개 토론이 진행됐다. EPA·연합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국제적인 공급망 혼란과 환율·유가 등 외부적인 영향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고에너지 중심의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에서 에너지 위기와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 강화에도 취약하다.

19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금과 같은 중화학 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앞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를 적게 쓰는 산업 중심으로 가도록 구조를 변화해야 한다"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비슷한 환율이나 금융적인 충격이 올 때마다 위기가 반복될 수 있고 심각할 경우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쟁력 향상의 전제는 기후변화 대응 =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산업부문별 비중을 보면 제조업이 1980년 15.2%에서 1990년 18.6%, 2000년 23.0%, 2010년 26.8%, 2021년 27.0%로 꾸준히 증가했다. 서비스업 비중은 1980년 55.1%에서 2021년 56.1%로 21년간 1.0%p 상승한데 그친 반면 제조업은 11.8%p 상승했다. 산업부문별 총부가가치 대비 비중(10년 평균)의 경우도 제조업은 2020~2021년 평균 29%를 기록했다. 1980년대 평균 18.8%에서 10%p 넘게 상승했다.

제조업 중에서는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운송장비 등 3개 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2020~2021년 52.5%로 제조업의 절반을 상회했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비중이 감소하는 탈공업화로 갔지만 우리나라와 독일, 일본은 제조업이 전체 산업의 실질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제조업 경쟁력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R&D 역량 강화와 함께, 위기를 겪고 있는 자동차·항공·조선 등 한계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산업별 구조조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쟁력 향상의 전제는 기후변화 등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규제에 대한 대응이다.

미국이 지난 8월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보고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IRA는 당장 국내 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기준 국내 산업부문의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1차 금속산업이 38.5%로 가장 비중이 높고, 화학(20.1%), 정유(10.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1차 금속산업의 핵심은 철강산업이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분야다.

국내 철강산업은 부가가치가 1% 상승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1.44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량과 부가가치가 증가하면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더 커지는 동조화 현상이 강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부가가치가 1% 증가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0.2333% 증가하는 탈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독일 역시 부가가치가 1% 증가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0.387% 증가에 그쳤다. 국내 철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노력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함께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을 통해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체계 구축과 투자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최성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금리가 상승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줄이 말라가고 있어서 벤처와 스타트업에 대한 시장원리에 기반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모태펀드와 같은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혁신과 창업의 인센티브를 계속 키워나가야 하고 그래야 좀비기업의 퇴출과 사업 재편을 위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순위는 취약자 보호" = 장기적인 경기 침체는 취약계층의 생존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IMF는 지난 11일 발표한 수정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최악의 상황이 이제부터 닥쳐올 것"이라며 글로벌 경기침체를 경고했다. IMF는 보고서에 '생계비 위기 대응'이라는 부제를 달아, 고물가에 따른 생활비 위기 상황을 부각했다.

IMF는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을 유지해야 하며 △재정정책은 통화정책에 부합하는 충분히 긴밀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생활비 압박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구조 개혁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공급 제약을 완화함으로써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더욱 지원할 수 있으며, △녹색 에너지 전환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자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각)에는 의장 성명서를 통해 "우리의 우선순위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싸우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안정 역할을 강조하고, 정부의 재정 정책은 고물가에 어려움 겪는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중·저소득 국가 140여곳의 빈곤 감소, 기후 변화 대응 등을 위해 최장 20년간 장기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재원인 회복·지속가능성기금(RST)을 올해부터 운용하는 데 이어, 식량위기 대응을 위해 최장 1년간 자금을 빌려주는 별도 대출 창구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비료 가격을 내년의 잠재적 위험으로 언급했다"며 "높은 식품 가격에 직면한 국가에 긴급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과도한 부채로 인해 재기가 어려워진 취약계층이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단지 정부가 정책서민금융상품의 공급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취약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책서민금융상품 대출을 받은 이용자들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서민금융상품 이용자에 대한 신용상담을 의무화해서 부채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혜진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업자금, 학자금, 미취업 및 실업, 신용점수 하락 등 채무조정 원인을 파악한 후, 채무조정 원인에 따른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를 통해 구체적 문제해결 방안의 제공이 가능하다"며 "신용상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용회복위원회의 역할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개인 파산·면책 받는데 평균 1년 가까이 걸려 = 정부가 이번에 시행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개인에 대해서는 현재 신용회복위원회가 연체기준에 따른 채무조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연체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해야만 대상이 된다. 따라서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채무상환 여력을 고려한 맞춤형 채무조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취약계층의 경우 실효율(채무상환 실패)이 전반적으로 높은 상황"이라며 "특히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 실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감안해 맞춤형 채무조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납 조세와 건보료를 포함한 모든 채무를 동시에 조정해서 채무자 구제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영국에서 시행한 '소액채무의 즉시 면책'도 제안했다. 영국의 부채구제명령은 부채가 3만파운드(한화 약 4800만원) 이하인 채무자(보유재산 2000파운드 이하, 약 320만원)에 대해 부채를 면책해주는 제도다. 이들 채무자들은 생계비 차감 월소득 규모가 75파운드(약 12만원) 이하일 때 신청이 가능하다.

임 연구위원은 "코로나 이후 양극화 심화에 대응해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의 포용성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공적 채무조정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1년 9월부터 2022년 8월까지 개인 파산·면책자 50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파산 사건접수부터 면책 선고까지 소요된 기간이 평균 328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회생 인가를 받은 23명의 경우 사건접수에서 회생인가까지 평균 226일이 소요됐다. 이들은 주로 기초수급자, 차상위, 장애인, 한부모, 만 60세 이상 등 취약계층이다.

신용회복위원회와 법원은 개인회생·파산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패스트트랙'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통상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기간을 3~6개월로 단축시켜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법원별로 개인회생과 파산선고 기간에 차이가 발생하고, 법원별 처리 기준에 차이가 있어 서류 검토가 지연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채무로 고통 받는 상황에서 1년 가량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가혹하다"며 "관련 업무 인력을 대폭 증원하는 등 신속한 구제 제도를 마련해서 극단적인 선택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을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시킬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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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김영숙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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