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없었다 … 세월호 닮은 '이태원 참사'

2022-10-31 11:33:23 게재

사망 154명, 부상 149명 대참사

노마스크축제 10만명 모이는데

안전인력 배치 안해 "예방이 정상"

국가추모기간·특별재난구역 선포

길이 40m, 폭 3.2m. 이태원의 비탈진 좁은 골목은 154명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골짜기로 변했다. 이곳엔 그들을 지켜줄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현장은 8년 전 304명이 숨진 진도 앞바다 그곳과 꼭 닮아있다. 10만명 이상이 모여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안전' 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하는 시민 ㅣ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헌화를 마친 뒤 절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 이후 '주최가 없는 행사였다'거나 '우려할 수준의 인파가 아니었다'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국가의 존재이유를 의심케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목격자와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지난 29일 밤 10시 15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핼러윈 행사를 위해 밀집한 인파가 좁은 골목길에 몰려 넘어지면서 31일 오전 6시 현재 154명이 압사하고 149명이 다친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부상자 중 중상자가 33명이나 돼 추가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출입 통제된 사고 현장 ㅣ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사고는 해밀톤호텔 뒷편 골목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엉켜 한두사람이 쓰러지면서 시작했다. 생존자들은 "마치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사고발생 신고 접수 2분 뒤인 밤 10시 17분쯤 용산소방서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인파와 교통상황 때문에 현장 접근이 어려웠다. 구조대와 시민들은 깔린 사람들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이 1시간 이상 지속되면서 깔린 사람들이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사망자가 많아 30일 새벽 4시가 넘어서야 희생자와 부상자를 주변 병원으로 모두 이송했다.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망자 154명 중 1명을 제외한 15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사망자는 남성이 56명, 여성이 98명이었다. 연령대별로는 20대(103명)와 30대(30명)가 주를 이뤘다. 외국인 사망자는 이란(5명)과 중국(4명) 러시아(4명) 미국(2명) 일본(2명) 등 14개국 26명이 발생했다.

재난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가 국가와 지자체의 안일한 대처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사전에 충분히 예견하고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세월호참사와도 닮아있다고 말한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대규모 군중이 밀집할 것을 예상했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안전인력을 배치했어야 했다"며 "더욱이 주최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더 신경 써 조치를 취하는 게 정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태원 일대에는 핼러윈 기간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예측이 일찌감치 나왔다. 하지만 어느 기관도 대규모 인파가 몰려 벌어질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대책은 세우지 않았다.

송창영 광주대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사고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일이 이에 해당한다"며 "이번 참사는 국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진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참사를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또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용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정부는 또 이날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서울 시내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희생자에 대한 조의를 표하기로 했다. 국가애도기간에는 모든 정부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재외공관에서 조기를 계양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은 애도를 표하는 리본을 패용한다.

정부는 또 국가애도기간 모든 정부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시급하지 않은 행사를 연기하고, 부득이한 행사의 경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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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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