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란·하마스 대표단과 회담

2023-10-27 10:32:58 게재

미국의 이란개입 경고에 맞불 … 이스라엘 "하마스는 테러조직" 반발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란의 대표단이 나란히 러시아를 방문해 눈길을 끌고 있다. 확전을 우려하는 미국이 연일 이란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가운데 이뤄진 회동이기 때문이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가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미국 제출 결의안에 반대해 손을 들고 있다. 이날 네벤자 대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교전의 일시 중지를 촉구한 미국 제출안에 대해 "극도로 정치화된 문서"라고 비판했다. 뉴욕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실상 맞붙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이팔 전쟁에서도 배후에서 격돌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 입장을 거듭 밝히는 한편 하마스의 배후로 알려진 이란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러시아가 이란과 하마스를 한꺼번에 접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표면적으로는 인질석방 등을 논의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2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이슬람 저항 운동인 하마스의 정치국 위원인 아부 마르주크가 모스크바에 있다"면서 "가자 지구에 억류된 외국 인질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위해 그와 접촉이 이루어졌고,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러시아인과 다른 외국 시민들의 대피를 보장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들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하마스 정치국의 고위 간부 무사 아부 마르주크가 이끄는 대표단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나온 데 대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하마스 대표단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하마스도 텔레그램 성명에서 대표단이 미하일 보그다노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가자지구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보그다노프 차관은 중동·아프리카 담당 대통령 특별대표를 맡고 있다.

하마스는 이번 회담에서 "서방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막는 방법을 논의했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과 러시아 외교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는 하마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피하면서, 중동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도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하마스, 이란 등 핵심 국가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직접 하마스 대표단과 만날 계획은 없다"면서 "접촉은 외교부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번 회동에 대해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하며, 하마스 대표단을 추방하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하마스 대표단을 초청한 것을 개탄한다"며 "하마스는 이슬람국가(IS)보다 나쁜 테러 조직이다. 하마스 고위 인사들의 손은 학살된 이스라엘인들의 피로 얼룩져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 외교관도 같은 날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고위 외교관들과 회담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알리 바게리 카니 이란 외무부 차관도 현재 모스크바에 있으며, 미하일 갈루진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 만났다고 밝혔다.

바게리 카니 차관은 보그다노프 차관과도 만나 중동 지역 분쟁 확대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면서, 양국이 중동 정세 안정을 위해 긴밀한 협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러시아 외무부가 설명했다.

보그다노프 차관과 바게리 카니 차관은 또 가자지구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신속히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보그다노프 차관은 아바스 수반이 가까운 장래에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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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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