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성폭력 피해자 기소유예 취소해야"

2023-11-15 11:31:08 게재

헌재, 평등권·행복추구권 침해

"피해자 처벌하는 부당한 결과"

군검찰이 군대 내 성범죄 피해자에게 군형법(추행 혐의)을 적용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지만 헌법재판소가 부당한 조치라며 이를 취소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처벌하는 부당한 결과로 이어져 피해자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는 부사관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2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상급자 B씨와 자신의 숙소에서 두 차례 성적 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B씨는 A씨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상급자였다.

군검사는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를 인정해 A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형사 처벌은 면하지만 수사기관이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어서 군인의 경우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이에 A씨는 "B씨와는 업무상 지휘·감독 관계에 있었고 자신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에 해당한다"며 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B씨는 실제로 2020년 1∼3월 A씨를 폭행해 유사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정형의 하한에 해당하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2차례 추행도 유죄가 인정됐다.

헌재는 A씨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이 "중대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 오해의 잘못이 있어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에 해당하고 그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취소했다. 헌재는 "A씨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의 피해자라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B씨가 A씨의 상급자로서 업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A씨가 "공적 관계에 지장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 소극적으로 응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점이 근거가 됐다.

아울러 "군형법 92조의6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의 피해자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며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과 집단적 공동생활을 본질로 하는 군대의 특성상 합의를 위장한 추행이 있었던 상황에서 실질적인 피해자를 처벌하는 부당한 결과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헌재는 같은 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8건을 같은 날 일제히 받아들여 검찰 처분을 취소했다. 사적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동성군인 간 성행위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본 작년 4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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