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관행없는 재고용 규정 "계약 종료 위법 아냐"

2023-11-20 11:08:50 게재

1·2심, 재고용 해야 … 대법, 파기 환송

"정년후 '재고용 기대권' 인정 어려워"

정년 후 재고용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나 그에 준하는 관행이 없다면 정년퇴직한 직원을 재고용하지 않더라도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 사회복지법인dl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고 20일 밝혔다.

A법인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요양시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B씨를 만 60세 정년에 따라 계약이 종료된다는 계약종료통지서를 전달했다. 다만 B씨는 이 사건 근로계약 종료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구제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신청을 받아들여 '부당해고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A법인은 반발하며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B씨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정년 후 촉탁직 근로계약이 체결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됐고, 그에 따라 참가인에게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정당한 기대권이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또 "정당한 기대권이 형성됐음에도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한 데에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원고가 B씨와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을 거절한 것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이 사건 근로계약 종료는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그 효력이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전제에선 이 사건 재심판정에 원고 주장의 위법사유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고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도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다.

A법인은 이미 요양보호사 숫자가 충분하기 때문에 B씨를 촉탁계약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더 많은 수의 요양보호사가 있다는 사정은 이 사건에서 계약 갱신을 거절할 합리적인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B씨를 비롯해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 5명 중 2명이 촉탁직으로 재고용되는 등 관행이 있었다는 이유였다.

요양원측은 B씨가 정직 1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으므로 재고용을 거부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징계 자체가 부당하므로 타당한 거부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거나 원고의 사업장에 그에 준하는 정도의 재고용 관행이 확립되어 있었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B씨에게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요양원 취업규칙에는 '업무상 필요에 의해 정년 퇴직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할 수 있다'고 적혀있는데 이는 재량을 부여한 것에 불과하고 재고용을 보장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대법원은 5명 중 2명이 촉탁직으로 재고용된 것도 그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할 만큼 확립된 관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원심의 판단에는 정년 후 재고용 기대권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이를 지적하는 상고 주장은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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