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의혹' 이정섭 검사 강제수사 왜?

2023-11-21 11:12:21 게재

검찰, 골프장·리조트 등 압수수색 … 공수처 수사 앞서 '제 식구' 수사

검찰이 '비위 의혹'을 받는 이정섭 전 수원지방검찰청 2차장검사(대구고검 검사)에 대해 고발된 지 한달 만에 전격 강제수사에 나서 주목된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엄정한 기준으로 수사와 감찰을 진행하라고 지시한데다 더불어민주당의 '제 식구 감싸기'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지난달 18일 대검찰청 고발에 이어 이달 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도 이 검사를 고발한 상태여서 공수처 수사에 앞서 강제수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정섭 검사 의혹' 용인CC 압수수색│2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인CC에서 검찰이 각종 비위 의혹으로 고발된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승호)는 전날 이 차장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CC 골프장과 강원도 엘리시안강촌 리조트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골프장과 리조트의 예약, 출입, 결제 내역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더불어민주당측 고발인 조사 후 제출된 자료 등을 검토하고, 이 차장검사를 피의자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차장검사의 비위 의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처음 나왔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국감에서 이 차장검사가 용인CC를 운영하는 처남 부탁으로 골프장 직원에 대한 범죄 기록을 조회해준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동료 검사들이 해당 골프장을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익명 예약을 해줬고, 카트와 캐디 관련 편의를 봐줬다고도 주장했다. 당시 그가 처남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 검사가 부킹해달래' 등 문자메시지도 공개됐다.

이밖에 김 의원은 이 차장이 2020년 12월 24일 엘리시안강촌 리조트에서 가족·지인과 모임을 했는데, 이 자리를 대기업 부회장이 접대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방역수칙이 적용되던 시점이라, 검찰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여부도 따져볼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자녀 학교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 의혹도 있다. 그는 딸의 초등학교 취학 전 처남 집으로 위장전입한 후 주소를 되돌렸다가, 입학 후인 2021년 4월 재차 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 공소시효(5년)가 살아 있는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내부 구성원에게 제기된 의혹에 관해선 엄정한 기준으로 수사와 감찰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차장검사는 김 의원이 제기한 의혹 중 위장전입은 인정했지만 다른 의혹은 부인했다. 엘리시안강촌 리조트에서 기업 고위 관계자를 만난 것은 인정하지만 접대를 받은 의혹은 부인하고 있다.

이 차장검사는 지난 9월 수원지검 2차장 검사로 부임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를 총괄했다. 특별수사팀에는 형사6부와 공공수사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가 참여하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쌍방울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쌍방울의 이 대표 '쪼개기 후원' 의혹, 이 대표 부부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쌍방울의 횡령·배임 등을 수사하고 있다.

이 차장검사는 앞서 문재인 정권 핵심 인사들을 수사하기도 했다. 2019년 8월 서울동부지검에서 '청와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맡아 조 국 전 장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을 기소했다. 2020년에는 수원지검에서는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사건을 수사해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 등을 기소했다.

검찰이 이날 전격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차장검사에 대한 수사를 공수처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달 18일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이 차장을 대검에 고발한 뒤, 이달 9일 이 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발의했다가 철회했고, 다음 날인 10일 이 차장을 공수처에 추가 고발했다.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할 경우를 대비해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가 먼저 강제수사에 나설 경우 수사 진척 정도에 따라 검찰이 이 차장검사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대검은 20일 이 차장검사를 대전고검 검사로 직무대리 발령했다. 이 총장은 대검 간부들에게 "초기 압수수색 단계라 혐의가 확인됐다고 볼 순 없으나, 피의자로 입건됐고 강제수사에 착수한 만큼 주요 사건을 계속 지휘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직접 인사조치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차장검사에 대한 감찰은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이어질 전망이다. 같은 내용의 민주당 고발장을 접수한 공수처도 수사 대상 범죄에 해당하는지 검토하면서 검찰 수사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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