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확인 위해 상대 손가락 골절 "상해죄 아냐"

2023-11-22 11:05:35 게재

2심, 벌금 200만원

대법, 파기 환송

상대방 손에 쥔 물건의 위험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먹을 강제로 펴는 과정에 상해(손가락 골절)를 입혔더라도 죄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싸움을 말리던 상황에서 흉기로 오인할 여지가 있어 정당 방위를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환송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서울 성북구의 한 복싱 클럽에서 근무하는 코치로, 2020년 11월 4일 저녁 7시 회원 등록을 취소하기 위해 온 10대 피해자 B씨에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회원 등록 취소 과정에서 복싱 클럽 관장 C씨는 B씨에게 "어른에게 눈 그렇게 뜨고 쳐다보지 말라"라고 질책했고, B씨는 "내가 눈을 어떻게 떴냐"라고 항의하며 몸싸움이 일어났다.

당시 B씨가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어 움켜쥐자, A씨는 이를 위험한 물건으로 착각해 빼앗기 위해 B씨의 왼손을 잡아 쥐고 있는 주먹을 강제로 펴게 했다. 이로 인해 B씨는 약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손가락 골절(좌 제4수지 중위지골) 판정을 받게 됐다.

1심과 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와 C씨의 몸싸움 상황에서 B씨가 손에 든 녹음기를 위험한 물건으로 착각한 점과 C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 방위로 판단한 것이다.

형법 제16조는 "자기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오인했을 때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반면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B씨가 이미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였고, 흉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의심할 정황과 위해 가능성도 낮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2심을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B씨가 C씨로부터 질책을 들은 뒤 약 1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온 상황과 C씨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까지 한 점을 주목했다.

대법원은 "몸싸움은 B씨가 항의나 보복의 감정을 갖고 계획적으로 체육관을 찾아와 발생했다"며 "당시 코치로서 관장과 회원 사이 시비를 말릴 위치에 있던 A씨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B씨가 위험한 물건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A씨를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A씨는 수사 과정부터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가 호신용 작은 칼 같은 흉기를 꺼내는 것으로 오인하여 이를 확인하려고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B씨 역시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이 상해를 입힐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쥐고 있던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 정당한 이유의 존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 환송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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