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국왕 '윤동주' 읊자, 윤 대통령 '셰익스피어' 화답

2023-11-22 10:55:40 게재

찰스3세, 국빈만찬서 한국어로 "위하여"

윤 "학창시절 비틀즈·퀸·엘튼 존에 열광"

영국 국왕인 찰스 3세와 윤석열 대통령이 상대국의 시를 읊으며 친교를 다졌다.

영국을 국빈방문중인 윤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버킹엄궁 볼룸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찰스 3세는 윤 대통령 부부에게 한국어로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는 "저 자신의 일생 동안 귀국이 이룩한 화려한 여정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제 어린 시절, 전후의 참담한 상황을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 국민들은 기적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 양국의 문화는 전 세계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소위 소프트 파워를 초강력 파워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공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불행히도 저는 세종대왕의 뒤를 따라 완전히 새로운 알파벳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은 찰스 3세는 "(한국이) 20세기를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 더 많은 나무를 보유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만찬사를 이어가던 찰스 3세는 윤동주 시인을 인용하며 한국에 대한 소양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그 와중에도 자아감을 보존하고 있음은, 한국의 해방 직전에 불행히도 작고하신 시인 윤동주가 예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시 '바람이 불어' 일부를 영어로 암송했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는 구절이었다.

찰스 3세는 한국어 건배사인 "위하여"를 끝으로 만찬사를 마무리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윤 대통령은 "국왕님의 깊은 인자함과 소탈함, 그리고 기후환경,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 정신건강 등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 영국 국민과 세계인들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어 영국인 6.25 참전용사들을 언급하며 "오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영국 참전용사들과 만나면서 양국의 우정이 피로 맺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겼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비틀즈와 퀸, 그리고 엘튼 존에 열광했다"며 "한국의 BTS와 영국의 콜드플레이가 함께 부른 'My Universe(마이 유니버스)'는 전 세계 청년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벗이여, 영국이여, 그대는 내게 결코 늙지 않으리라"는 건배사를 영어로 제의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104번' 시구에 '영국'을 덧붙이는 재치를 발휘한 것.

한편 이날 만찬은 한국 측에선 윤 대통령 이하 장관·수석·비서관급 인사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기업인들이, 영국 측에서는 리시 수낙 총리, 윌리엄 왕세자 부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등 각계 주요인사가 모두 180여명 참석했다.

이날 식탁에는 수란과 시금치 퓨레로 만든 타르트렛, 셀레리악 크로켓, 칼바도스 소스를 곁들인 꿩 가슴살 등의 요리가 1761년 조지 3세 대관식 때 제작된 접시에 담겨 나왔다.

런던 =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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