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출석' 누락 보고서 쓴 경찰 "무죄"

2023-11-27 11:16:39 게재

대법, 파기 환송 … "고의 증명 안돼"

폭행 후 도주한 외국인 피의자가 자진 출석 의사를 전달했지만 경찰관이 이를 누락해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면 죄가 될까. 불법체류자인 피의자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출석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사실을 누락했다는 것만으로는 허위공문서 작성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아 무죄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경찰관으로 베트남 국적 B씨의 특수상해 사건을 담당했다. B씨는 2020년 6월 같은 국적 피해자에게 약 2주간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한 뒤 도주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7월 B씨는 근무하던 회사 현장소장을 만나 함께 경찰서에 출석하기로 했고 현장소장은 같은 날 A씨에게 전화를 걸어 B씨의 자진 출석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당시 다른 사건 수사로 외근 중이던 A씨는 현장소장에게 '오늘 조사가 어려우니 다음에 오라'는 취지로 출석을 보류시켰다.

이튿날 A씨는 수사보고서에 'B씨가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이후에는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도주한 상태이며, 피해자 및 회사 관계자 또한 B씨에게 수회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고 소재 불명인 상태'라는 취지로만 기재했다. B씨의 자진 출석 의사나 출석 보류 경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B씨는 자진 출석 예정일에 체포됐다.

검찰은 주요 사건 경위를 수사보고서에 누락해 경찰·검사·판사를 속여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아 집행하도록 했다며 2021년 2월 직권남용체포,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B씨에게 유리한 사정을 기재하지 않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사실 기재에 해당하고 허위 기재라 할 수 없다며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수사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된 게 아닌 이상 B씨의 유리한 정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해서 팀장 및 영장판사를 속여 체포영장을 신청·발부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보고 직권남용체포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은 A씨가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B씨의 자진 출석 의사 표명 및 출석 보류 경위에 관해 누락하고 도주 상태에 있다거나 소재 불명 상태에 있다고 한 것은 허위에 해당하고, 허위성에 대한 인식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체포영장이 신청·발부돼 직권남용체포죄도 인정된다고 봤다. 2심은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시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비록 A씨가 이 사건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 B씨에 대한 체포 사유와 관련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나, 이 사건 수사보고서 내용에 거짓이 있다거나 허위공문서작성에 관한 확정적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에 관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A씨가 B씨의 자진 출석 의사를 전달받기는 했지만 그러한 의사가 진정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웠고 계속 잠적한 상태에서 B씨 소재를 알지 못한 만큼, 이 사건 수사보고서에 자진 출석 표명 및 출석 보류 경위를 기재하지 않았다고 A씨에게 허위공문서작성의 고의 내지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허위공문서작성죄의 성립 및 고의, 직권남용체포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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