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지금 '한국의 꿈'은 어디 있나

2023-11-30 11:55:28 게재

2024년을 한달여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잿빛이다. 내년 살림살이가 올해보다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버린 지 오래다. 경제는 도무지 좋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서민들의 삶을 짓누르는 민생환경은 날로 무게를 더한다. 사회 양극단의 건널 수 없는 간극, 인구절벽과 초고령화, 남북한의 극단적 대치, 지정학적 갈등 격화, 기후재앙 등 들리는 것이라고는 암울한 소식들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열고 꿈을 보여줘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절망만 보탠다. 윤석열정권 1년 6개월 어디 단 한번이라도 국민에게 희망가를 들려준 적이 있었던가. 하긴 앞 정권들도 도긴개긴이었으니 딱히 현 정권만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윤석열정권을 더 타박하게 되는 건 갈수록 팍팍해지는 일상이 소소한 꿈마저 뭉개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에는 꿈을 잃은 이들만 넘쳐난다.

미국 중국을 G2로 만든 아메리칸 드림과 중국몽

꿈이 없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꿈이 없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이 G2로 대접받게 된 것도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과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이 꿈들은 국가의 미래가능성과 국민의 희망을 상징한다.

물론 아메리칸 드림과 중국몽은 큰 차이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개인 차원의 기회를 말하지만,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의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대공황으로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반면 중국몽은 국력이 거침없이 상승하던 시기에 제시됐다는 점도 다르다.

'아메리칸 드림'은 역사학자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가 대공황 시절인 1931년 제안한 개념이다. 애덤스는 '미국의 서사시(The Epic of America)'에서 모든 사람이 능력이나 성취에 따라 삶을 한층 풍요롭고 충만하게 만들 기회가 보장되는 게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썼다.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를 만끽하다가 대공황의 나락으로 떨어진 절망의 시기에 나온 아메리칸 드림은 고통받는 미국인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이후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번영과 함께 하는 슬로건이 됐다.

'중국몽'은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2주 뒤인 2012년 11월 29일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시진핑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부흥의 길(復興之路)'을 관람한 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곧 오늘날 중화민족의 꿈"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중국몽은 더 정제되고 확장되면서 이제는 중국이 바라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종의 주문(呪文)이 됐다. 지도부와 인민이 공유하는 사회경제적 목표이자, 사회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의 모순을 덮는 안전망, 애국주의와 배타주의가 뒤섞인 개개인의 가치기준이 된 것이다.

근래들어 아메리칸 드림과 중국몽은 심각한 위협에 봉착했다. 심화되는 불평등이 두 나라의 꿈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모든 이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냉소가 넘쳐난다. 중국몽 또한 인민의 욕구를 억누르는 기재이자 이웃나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꿈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두 꿈을 비교분석한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국가의 꿈이란 간절히 바라는 미래의 목표를 사람들에게 제시하기에 미래지향적"이라고 강조한다.(책 '우발적 충돌 : 미국과 중국은 왜 갈등하는가') 대공황이라는 절망의 시기에 뿌리를 둔 아메리칸 드림, 굴욕의 과거를 뒤로하고 번영의 미래로 나가려는 중국몽 둘 다 기본적으로 내일을 여는 힘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꿈' 기대하는 건 그냥 백일몽인가

그러면 '한국의 꿈'은 어디 있는가. 대한국민이 꿈꿀 미래는 무엇인가. 지금 대한민국호를 이끄는 윤석열 대통령 리더십의 근본적 한계는 '미래비전 부재'라고 했다. 대선 때부터 제기됐던 문제였고 지난 1년 6개월 여실히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답게 과거에 집착했고, 집권 2년차가 다 돼 가도록 '한국의 꿈'은 고사하고 아직 어떤 나라를 만들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국력은 쇠퇴하고, 국격은 추락하고, 국민도 꿈을 잃어버렸다.

물론 나라의 꿈을 꼭 정권담당자들이 제시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도자의 통치력과 리더십이 한나라가 꿈꾸는 정치경제를 만드는데, 그리고 국민이 절망에서 일어서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그걸 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갖는 것 자체가 백일몽(白日夢) 아닌가.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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