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전범기업 배상 책임져야

2023-12-21 11:34:38 게재

대법, 1억~1억5천만원 배상 판결 … 일본기업 국내 재산 강제처분이 관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1억~1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또다시 열렸다. 하지만 일본 기업 반발로 실제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정이다. 1차 소송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국내 재산 강제처분을 시도했지만 일본 기업 반발로 실제 손해배상을 받지는 못한 것이다. 정부도 '제3자 변제안'을 내놓았지만 일부 피해자들이 반발해 위자료 지급은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1일 오전 곽 모씨 등 7명이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곽 할머니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만 17~20세였던 1942~1945년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야하타 제철소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약속한 월급보다 훨씬 적은 돈을 지급받았다며 2013년 3월 소송을 냈다.

원심은 강제징용 과정에 협박 등 불법성이 있었다며 피해자에게 각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신일철주금과 동일성이 인정된 일본제철을 배상 주체로 판단했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에 청구권이 없고 시효가 소멸했다는 일본제철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소송과 별개로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오전 강제노역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9년 10개월, 2018년 상고심에 계류된 지 5년여만이다.

고 김재림 할머니 등 4명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1944년 5~6월 광주전남·대전충남지역에서 당시 13~15세 소녀 300여명을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노역에 동원했다며 2014년 2월 소송을 냈다.

1·2심은 김 할머니에게 1억2000만원, 고 양영수·심선애 할머니에게 1억원, 유족인 오철석씨에게는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미쓰비시측은 소멸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번 소송과 법적 쟁점이 유사한 과거 강제동원 소송에서 이미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2018년 10월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양국 간 피해 배상과 보상이 일부 이뤄졌더라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과 일본 기업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해당 판결에 일본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당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측은 손해배상금 지급을 거부한 일본 기업측의 국내 재산을 강제 처분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일본측이 항고에 재항고로 지연시키면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올해 들어 정부는 일본과 관계 개선을 꾀하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내놨지만,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일부 피해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승소한 피해자 총 15명 중에서는 10명이 해당 방식을 수용했다.

이번 소송은 2012년 일본제철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처음으로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자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제기한 소송이어서 '2차 소송'으로 불린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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