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알아루리 사망 일파만파

2024-01-03 10:43:57 게재

헤즈볼라 등 복수 다짐 … 이스라엘 공식 언급 않은 채 "높은 준비 태세"

하마스와 이란 그리고 헤즈볼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살레흐 알아루리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이 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이 보복을 다짐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하마스 지도자 암살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잇따라 왔기에 모든 시선은 이스라엘로 쏠릴 수밖에 없다. 네타냐후는 이번 전쟁 발발 이전부터 알아루리를 사살하겠다고 공언해왔다고 AP 통신은 설명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오른쪽)가 2023년 6월 21일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운데)와 정치국 부국장 살레흐 알아우리를 만나고 있다. 알아우리는 2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네타냐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하마스의 모든 지도자들이 어디에 있든 암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12월 초에는 이스라엘 내부 보안 기관인 신베트의 수장 로넨 바가 이스라엘 국회의원들에게 "가자지구, 서안지구, 레바논, 터키, 카타르 등 모든 곳에서" 하마스 지도자들이 살해될 것이라고 말한 녹취록이 유출돼 파문이 일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이스라엘군은 아직 이번 공습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알아루리 사망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방어와 공격 모든 분야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이어 "오늘 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마스와 전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높은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고문인 마크 레게브도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그랬든 분명해야 한다. 이번 공격은 레바논 국가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다"면서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정밀 공격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아루리 사망에 대해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은 이스라엘 소행으로 단정 짓는 분위기다. 하마스 정치국장인 이스마엘 하니예는 이번 공격을 "테러 행위, 레바논 주권 침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행위 확대"라고 규탄했다.

헤즈볼라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알아루리 암살은 대응 또는 처벌 없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저항 세력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있다"며 복수를 다짐했다.

무함마드 시타예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총리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알아루리 암살을 비난하며 "뒤따를 수 있는 위험과 결과"에 대해 경고했고,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이 이끄는 파타당의 라말라 지부는 알아우리를 살해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3일 하루 총파업을 예고했다.

특히 이번 공격은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 시설이 아니라 수도 베이루트 인근이어서 더욱 파장이 커지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이란이 지원하는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쟁에 개입한 헤즈볼라와도 무력 대치해 왔지만 베이루트 인근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을 향해 "시온주의자 정권이 테러와 범죄에 기반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한 범죄"라고 말했다고 이란 국영 IRNA 통신과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카나니 대변인은 특히 "순교자의 피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온주의 점령자들에 맞서 싸우려는 저항의 동기를 다시 불붙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의 알아루리 살해를 '암살'로 표현하며 레바논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2일 오후 6시께 이스라엘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드론)가 베이루트 남쪽 외곽에 위치한 하마스의 사무실을 타격해 6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했고, 사망자 중에는 하마스 정치국의 이인자이자 하마스 전체 서열 3위로 평가받는 살레흐 알아루리 부국장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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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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