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싱가포르가 부패 문제를 다루는 방식

2024-01-05 10:51:47 게재
안영집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전 싱가포르 대사

싱가포르는 2022년 국제 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전세계 18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 덴마크 핀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에 이어 스웨덴과 공동 5위를 기록했다. 그간 줄곧 3위권을 지키다가 미세한 점수 차이로 2단계 내려갔지만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부패가 없는 국가라는 독보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이 조사에서 다년간에 걸쳐 순위가 조금씩 상승했지만 현재 31위를 기록 중이다.

세계경제포럼이 2014~2015년에 발간한 국제경쟁력보고서의 작성 과정에서 세계적인 기업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싱가포르의 부패 문제 등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 '별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처럼 싱가포르하면 떠오르는 '부패가 적은 국가'라는 인식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사실 과거 싱가포르에도 여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의 부패가 존재했다. 영국 식민정부 시절에는 경찰관들까지 아편 밀매에 깊숙이 간여한 사례도 있었고 독립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부패 사례들이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나타났다.

정치지도자 모범 보이면서 선제적 대응

부패와의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 몇가지 요소가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로 만든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정치지도자들의 강력한 의지다. 정치지도자들은 스스로 부패하지 않은 모범을 보이면서 반부패 전략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선제적으로 정해왔다. 반부패 담당 기관인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 Corrupt Practice Investigation Bureau)이 정치적 간섭을 받지 않고 불편부당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방패 역할을 해주며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지원했다. 탐오조사국이 2014년 기준 국민 1인당 5.36달러를 지출할 수 있게 하고 직원 1인당 2만6000여명을 담당하는 비율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둘째, 포괄적인 반부패법을 제정해 담당 기관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법적 권한을 주었다. 탐오조사국 요원에게 체포 및 압수수색할 권한을 부여하고 필요시 공무원과 그 배우자 자녀 대리인의 은행 장부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피의자가 알려진 수입원에 비해 과도한 자산을 갖고 있으면 그 금원과 부동산을 스스로 설명하도록 하는 규정도 제정했다.

셋째, 반부패기관은 한가지 일만을 전담하도록 했다. 총리실 산하 독립기관인 탐오조사국은 반부패 업무만을 전담하도록 해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였다.

넷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했다. 싱가포르는 부패 행위자가 체포되고 엄하게 처벌받는 국가에서는 그 행위 자체가 위험은 높고 보상은 낮은 것으로 인식돼 부패가 확산될 수 없다는 믿음을 계속 유지해왔다.

싱가포르의 반부패 정책이 일관성과 강인함을 보여준 사례는 많다. 1979년 전국노동조합총협의회(NTUC) 의장이자 집권당 국회의원이었던 인사는 10만싱가포르달러 정도의 노조자금과 관련한 신뢰 위반 혐의로 고소된 후 이듬해 보석기간 중 해외로 도피해 숨어 살다 35년 만에 해외공관에 자수했다. 2016년 법원은 81세가 된 그에게 5년형을 선고했고 그는 상당 기간 실형을 살아야 했다. 1986년 당시 국토개발부장관은 국유토지를 민간이 개발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고 100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탐오조사국의 엄격한 조사를 받은 후 모든 것이 본인의 책임이라며 자살했다.

가장 최근의 예로서는 현직 교통부장관이 2023년 7월부터 현재까지 부패혐의로 탐오조사국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휴직처리와 함께 여권압수, 급여삭감, 정부 기관과의 연락금지 등의 처분을 받고 있다.

공공 부문 뿐 아니라 민간 부문 부패에 대해서도 엄격한 처벌과 함께 부패수익금의 철저한 압수가 이뤄진다. 2018년 한해 동안 탐오조사국이 조사한 신규사건 107건 중 88%가 민간 부문의 부패 관련 사건이었고 평균 98%를 기소했다. 부패사건으로 잠시 형을 살더라도 형 종료 후 엄청난 부패수익금을 만질 수 있는 경우는 처음부터 생길 수가 없다.

부패 행위 고위험 저보상 되도록 해야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공공 및 민간 분야의 부패 사건들에 대해 처벌 수위가 낮고 일관성이 없어 부패행위가 계속 반복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사례도 참고해 부패 행위가 고위험 저보상 행위가 되도록 보다 정교한 체제를 만들면 우리에 대한 부패인식지수도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