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넣은 녹음기 내용 증거능력 부정

2024-01-11 11:12:05 게재

대법 "공개되지 않은 타인과 대화에 해당"

초등학교 교사의 아동학대 행위를 의심한 학부모가 아이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내용에 대해 대법원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오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2018년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던 A씨는 자신의 반으로 전학 온 학생에게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자신의 반 학생에게 '학교를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돼있다' 등의 말을 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학대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A씨의 이 같은 행위는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두면서 발각됐다. 피해 학생이 'A씨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다'는 말을 들은 학부모는 상황 파악 및 학대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고, 이후 해당 녹음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1심에서는 A씨에게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수강을 명했다. A씨는 항소를 제기하며 '비밀리에 녹음한 부분은 위법증거수집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

2심에서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발언 중 일부는 피해 아동에 대한 학대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일부 발언은 초등학교 교사가 수업과 관련해 취할 수 있는 조치 내지 발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해 학생의 녹음기를 통해 녹음된 파일에 대해서는 "피해자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스스로 자신의 법익을 방어할 능력이 없다. 또 녹음자와 대화자(피해자)를 동일시 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또 "이 사건과 같이 말로 이루어지는 학대 범행의 특성상 녹음을 하는 외에는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밝혀내고, 피해자의 법익을 방어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수단을 강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피해아동의 부모가 피해아동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두어 피고인의 교실 내 발언을 녹음한 녹음파일 등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2항,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며 "이와 달리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이 있음을 전제로 일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시간 중 한 발언은 통상적으로 교실 내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서 교실 내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일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의 발언은 특정된 30명의 학생들에게만 공개되었을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대화자 내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평가할 수는 없다"며 "대화 내용이 공적인 성격을 갖는지 여부나 발언자가 공적 인물인지 여부 등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녹음 등으로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에 관한 선례에 따라, 교사의 수업시간 중 교실 내 발언을 그 상대방이 아닌 제3자 즉, 학생의 부모가 녹음한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에 정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해 법 제14조 제2항, 제4조에 따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면서도 "이번 판결은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오해를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것으로, 유무죄에 관해 종국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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