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식초 제조 "영업등록 아닌 신고 대상"

2024-01-15 11:13:06 게재

1·2심 벌금 1500만원 … 대법, 파기환송

"통·병조림 제외한 모든 식품이 영업신고 대상"

집에서 직접 만든 식초를 판매하는 것은 식품위생법상 '영업 등록'이 아닌 '영업 신고'가 필요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식품위생법 위반, 사기,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7년간 숙성 및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식초를 제조했고, 2020년 5월쯤 피해자 B씨에게 해당 식초가 파킨슨병에 수반되는 변비 증세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효능 등이 있다고 속여 7병을 1240만원에 판매했다.

검사는 A씨의 이러한 식초 제조 및 판매 행위 등에 대해 사기, 무등록 식품제조업으로 인한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쟁점은 A씨에게 영업등록 의무가 있는지였다. A씨는 유통업체에 판매한 것이 아니고 집에 방문한 소비자에게 바로 팔았으므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이란 식품을 업소에서 제조·가공한 뒤 직접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영업등록 의무는 없고 관할 관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

1심에서 A씨는 기소된 혐의 전부를 유죄 판결받고,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B씨의) 장모는 알려 준 복용법에 따라 식초를 마셨지만 변비 치료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위염 증상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직무를 집행 중인 집행관에게 폭언하면서 협박을 해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A씨는 자신의 행위가 식품제조·가공업이 아닌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이라며 항소했다.

식품제조·가공업의 경우 영업등록 대상이며 미등록 시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반면 영업신고 대상인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은 미신고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2심은 "피고인의 행위는 무등록 식품제조·가공업을 한 것에 해당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이나 그 대상 식품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파기 환송했다.

A씨가 식초를 제조·판매한 행위가 영업 등록이 요구되는 식품제조·가공업이 아닌, 영업 신고가 필요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식품위생법령은 통·병조림 식품 등을 제외한 모든 식품을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대상 식품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식품의 제조 기간의 장단에 따라 이를 달리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행법은 기성 상품을 판매 장소에서 소비자에게 덜어서 판매하는 경우도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인정 범위에서 식초 등 일부 식품은 제외한다. 대법원은 그러나 A씨가 제조한 식초는 자신이 직접 제조해 판매하는 것이므로 이 규정 역시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다만 A씨에게 적용된 사기 등 나머지 혐의는 대법원에서도 유죄로 인정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영업 등록이 요구되는 식품제조·가공업과 구별해 영업 신고가 요구되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개념, 요건 및 그 대상 식품 등에 관해 최초로 설시해 이를 보다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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