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서울경찰청장) 기소 고민 깊어지는 이원석(검찰총장)

2024-01-16 11:09:17 게재

수사심의위, 검찰과 달리 서울청장 기소 권고

서부지검 "수사결과·의결 종합해 최종 처분"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부실 대응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재판에 넘길지 이원석 검찰총장의 결정이 주목된다.

당초 수사했던 검찰 내부에서도 기소와 불기소 의견이 분분해 이원석 총장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를 열었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는 수사심의위에서 잠정의견이긴 하지만 김 청장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수사심의위가 기소 의견으로 권고하면서 이 총장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수사팀 의견을 무시하고 기소하기도 그렇고, 수사심의위 권고 의견을 무시하고 불기소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된 것이다.

출근하는 이원석 검찰총장│이원석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전날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부실 대응 책임을 물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재판에 넘길 것을 권고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대검찰청에 따르면 수사심의위 현안위원들은 15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김 청장에 대해 9(기소)대 6(불기소) 의견으로 기소하도록 검찰에 권고했다. 같은 혐의로 수사심의위에 회부된 최성범 전 용산소방서장에 대해서는 1(기소)대 14(불기소) 의견으로 불기소 권고안이 의결됐다.

김 청장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도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사상자 규모를 키운 혐의를 받는다.

최 전 서장은 참사 발생 이후 구조 지휘를 소홀히 해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를 받아왔다.

검찰 주변에서는 당초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권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유족측도 개최 결정 직후부터 '불기소 수순'이라며 반발해왔다.

그러나 수사심의위는 이날 예상을 깨고 김 청장을 기소하는 게 맞는다고 결론 내렸다.

회의는 수사팀의 수사 결과 설명과 피의자·피해자 쪽 의견을 각각 1시간∼1시간 30분씩 듣고 토의하는 과정을 거쳐 오후 9시를 넘겨 종료됐다.

수사심의위에 직접 참석한 유족측에 따르면 검찰 수사팀은 이날 현안위원회에서 두 사람에 대한 수사 결과를 설명하며 '주의 의무'가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예규인 심의위 운영지침에 따르면 주임 검사는 수사심의위의 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가 나왔지만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이번 사안은 이원석 총장이 고심 끝에 직권으로 소집한 만큼 가급적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총장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외부의견을 종합적으로 충분히 검토하고 수사 절차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심의위 소집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이미 대검과 서부지검의 의견이 엇갈렸다는 '잡음'이 흘러나온 상황에서 수사팀이 심의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불기소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부지검은 이날 수사심의위의 권고 의견이 나오자 "현재까지의 수사결과와 오늘 대검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 내용을 종합하여 증거, 사실관계 및 법리를 면밀하게 분석한 다음 최종적인 처분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부지검이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는 경찰 내 실질적 2인자로 평가받는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서울청장에 대해서는 위원 15명 중 6명이 불기소 의견을 주장할 만큼 쉽지 않은 사건"이라며 "이원석 총장은 수사팀의 입장을 들어보고 대검 참모들의 의견도 들어본 후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월 13일 김 청장 등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서부지검은 1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수사를 이어왔다.

검찰은 현재까지 경찰이 송치한 참사 연루자 23명 중 6명을 구속 상태로, 10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이중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 등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다.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장은 증거인멸교사 등 관련 문건을 사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김 청장과 최 전 서장을 비롯해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 정대경 전 서울경찰청 112상황3팀장, 이태원파출소 팀장 2명, 이봉학 용산소방서 현장지휘팀장 등 7명에 대한 처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중앙·지방정부 지휘 계선상에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로 처리했다. 보고체계를 통한 구체적 관여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수사준칙에 따라 검찰이 재수사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재수사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이상민 장관에게 규범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으나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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