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유머 종북' 발언 "명예훼손 아냐"

2024-01-31 11:13:03 게재

대법 "넓은 의미의 의견표명일 뿐"

온라인 커뮤니티에 '종북 세력'이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국가정보원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4일 '오늘의 유머'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 이 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고 31일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종북 관련 발언이 원고에 대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명예훼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정원은 2009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오늘의유머'를 포함한 다수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천회에 걸쳐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들을 지지·찬양하거나 반대·비방하는 게시글, 댓글을 작성하고 글에 '추천(찬성)' 또는 '비공감(반대)'을 눌러 여론을 조작했다.

해당 사건을 주도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으로 지난 2018년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국정원 대변인은 2013년 1월 28일 언론 인터뷰에서 '오늘의유머가 종북 사이트인지' 묻는 기자에게 "종북 사이트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만 (오늘의유머가)종북세력이나 북한과 연계된 인물들이 활동하고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는 공간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늘의 유머 운영자인 이씨는 국정원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사이트의 재산적 가치가 하락했고, 원고인 본인은 정신적 피해를 받았으므로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에서는 국가가 이씨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국정원 댓글 조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질 무렵이라 일반인은 대공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 대변인의 종북 관련 발언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남북 분단 사회에서 종북이라는 표현이 낳는 부정적 인상을 고려하면 이씨가 다년간 커뮤니티 운영 등을 통해 쌓아 올린 명성이 침해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씨의 명예훼손을 일부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국정원 대변인의 발언은 유보적·잠정적인 판단 내지 의견이라는 점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다"며 "종북 관련 발언은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사건 사이트에 대한 넓은 의미의 정치적 평가 내지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종북 관련 발언이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더라도, 단순히 '종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그 표현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특정인의 평판이나 명성이 손상됐다는 사실이 증명돼야만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사건 발언은 사이트 이용자 일부가 종북세력이나 북한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에 불과해 그 표현이 지칭하는 대상이 원고(이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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