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대재해처벌법 엄정 집행이 먼저다

2024-02-02 00:00:00 게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재협상이 무산되면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이 기정사실화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 5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시행됐고 2년 유예를 거쳐 지난달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준비부족 등을 이유로 2년 추가유예를 추진했지만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소규모 영세사업장에까지 확대 적용함에 따라 향후 사고예방 효과보다 범법자 양산과 사업장 폐업, 근로자 실직 등의 부작용만 현실화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법 시행 이후 산재 사망자 크게 감소

이러한 주장은 2년 전에도 있었다. 이들은 이 법 시행 전부터 “뚜렷한 효과 없이 과도한 처벌로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행 2년을 맞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한해 동안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전년(644명) 대비 상당 부분 감소한 500명대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3~4년간 600~700명대였던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수와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특히 500명대 감소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나온 결과라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정착됐다고 속단할 상황은 아니다.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뒤 삼표산업 경기 양주채석장에서 토사 붕괴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졌다.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으로 처벌 수위와 범위에 관심이 쏠렸다.

대검찰청은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실무에 참고할 ‘벌칙해설서’와 강화된 법정형에 부합한 새로운 ‘양형기준’을 마련했다. 당시 본지가 관련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면 전문경영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총수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있었다.

삼표산업은 그룹총수인 정도원 회장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삼표산업 지분 98.25%는 그룹 지주회사 삼표가 보유하고 있고 정 회장은 삼표 지분 65.99%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하지만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이사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는데 그쳤다. ‘1호 수사’에 이름을 올린 삼표산업 사건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첫 재판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가 수사를 맡아 검찰로 송치한 사건의 처리율은 34.3%에 불과하다. 수사를 시작해 1심 판결까지는 1년 5개월이 걸린다.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면 업무부담은 더 커지고 사건 처리속도는 계속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취임 당시 서민들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민생침해범죄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에 더욱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일벌백계’로 다스려 ‘패가망신을 한다’는 인식이 심어지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산재 피해자의 대부분이 서민인 만큼 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면서 추가로 법 적용을 받는 곳은 83만7000곳이다. 중대재해의 7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만큼 산재 예방효과가 기대된다. 고용노동부 2022년 통계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에 비해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산재사망자수가 4배나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성공적인 정착 여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예방과 관리감독

노동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일벌백계도 중요하지만 산업현장에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과 관리감독이다. 산업안전보건청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여부와 관계없이 필요한 기관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유사한 법체계가 있는 나라에는 거의 대부분이 산업안전보건청과 같은 기관을 설립해 운영을 하고 있다. 여야가 정쟁 대상으로 삼지 말고 머리를 맞대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의 청년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다 산재피해 유가족의 절규가 모여 제정된 법이다. 수많은 논란에도 법 시행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에 눈감지 말고 법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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