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등록회계법인 ‘경고’ … “원펌으로 신속 전환해야”

2024-02-14 00:00:00 게재

10곳 부당거래 적발 … 2년간 나머지 25개 법인도 감리

금융당국이 감사품질 향상을 위해 상장법인 외부감사를 맡고 있는 중견·중소 등록회계법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경영관리체계 점검과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중소형 회계법인들을 상대로 ‘감사인 등록요건’ 준수 여부를 점검한 결과 12개 회계법인 중 10곳에서 다수의 부당거래 혐의가 적발됐고 올해와 내년 나머지 25개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감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내일신문 2월 7일자 보도 참조)

등록회계법인은 품질관리의 효과성·일관성의 확보를 위해 자금·인사 등 경영전반의 관리체계를 통합관리하는 소위 ‘원펌(One-firm)’ 체제의 구축·운영을 내용으로 하는 ‘감사인 등록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12개 회계법인에 대한 감리결과 대다수가 원펌이 아닌 회계사 개인과 팀단위 집합체인 ‘독립 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중소형 회계법인 감사인 감리결과’에 따르면 10개 회계법인에서 소속 회계사 55명이 50억4000만원 규모의 부당거래를 한 혐의가 드러났다.

부모, 형제 등 가족을 회계법인 직원으로 채용해 근로제공 없이 급여를 지급하거나, 용역제공 없이 기타·사업소득 등을 지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81세의 아버지를 거래처 관리 담당 직원으로 고용해 8300만원의 가공급여를 준 사례, 동생을 회계법인을 운전기사로 고용해 5700만원의 가공급여를 지급하는 등 가족 채용을 통한 부당거래가 비일비재했다. 또 소속 회계사 또는 본인의 가족 등이 임원이나 주주인 특수관계법인(페이퍼컴퍼니)에 가치평가 등의 용역을 의뢰하고 실질적인 용역제공 없이 용역수수료 명목으로 비용을 부당지급했다.

심지어 회계사가 대부업체를 운영하면서 회계법인을 이용해 소상공인으로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넘어서는 이자를 수취한 사례도 적발됐다. 법정 최고금리 이외에 연평균 4.3%를 경영자문 명목으로 받는 등 회계법인을 초과 금리 수취의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다.

또 다른 회계법인은 퇴사한 회계사가 과거 관리하던 고객사 관련 매출의 30%를 매년 해당 회계사에게 지급했다. 금감원은 알선수수료를 금지하고 있는 공인회계사 윤리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알선수수료 지급이 실질보수 하락으로 이어지면 감사업무에 충분한 인력 투입이 되지 않아 감사품질의 저하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회계법인 내부에서 이 같은 부당거래가 가능한 이유는 이들 법인들이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채산제는 법인 내 감사조직들이 각각 수임한 감사 건 관련 수입·지출을 자체 관리하고, 법인에는 할당받은 분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의 경영이다. 법인 내 각각의 조직은 다른 팀이 누구를 채용하는지 관심이 없고, 법인 차원에서도 관리·감독이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금감원은 회계사들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수사기관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공인회계사법과 대부업법 위반혐의는 한국공인회계사와 지방자치단체 등 소관기관에 통보했다.

상장법인 감사인등록요건 위반사항은 관련 법규에 따라 제재가 이뤄질 예정이다. 제재는 시정조치와 ‘감사인 지정점수’ 감점 조치 등이 예상된다. 지정점수가 깎이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정받는 감사대상 상장법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매출에 타격을 받는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일정기간 영업정지 처분과 비슷한 제재를 받는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등록회계법인들은 독립채산제 방식이 아니라 원펌 형태의 경영관리체계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점검결과는 지난해 감리를 벌인 12곳에 대한 것이며 올해와 내년에도 각각 12~13개 중소형 등록회계법인에 대한 감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등록회계법인 41곳 중 원펌 체제로 운영되는 대형 회계법인 4곳을 제외하면 37개 중소형 회계법인이 금감원의 주요 점검 대상이다. 등록회계법인은 등록요건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

금융위는 지난 2019년 1월 ‘상장회사 외부감사인 등록요건’을 의결했다. 등록요건 중에는 ‘물적설비 및 업무방법’ 항목이 있으며 ‘회계법인 내 인사, 수입·지출의 자금관리, 회계처리, 내부통제, 감사업무 수임 및 품질관리 등 경영 전반의 통합관리를 위한 체계를 갖출 것’을 명시하고 있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회계법인은 해당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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