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매자도 사기범에 속은 피해자”

2024-02-26 13:00:04 게재

온라인 거래 사기 사건에서 계좌번호 등을 이용당한 판매자는 돈을 떼인 구매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온라인 거래에서 사기를 당한 A씨가 판매자 B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이같은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사건은 B씨가 2021년 11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굴삭기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사기범은 굴삭기를 구매할 것처럼 B씨를 속여 계좌번호 등을 알아냈고, 이어 굴삭기 구매를 원하던 A씨에게 접근해 B씨를 사칭하며 B씨 계좌로 돈을 보내게 했다. B씨가 제시한 판매가는 6500만원이었지만 사기범은 A씨에게 5400만원만 보내면 굴삭기를 판매하겠다고 속였다.

A씨는 사기범의 요구대로 B씨 계좌로 5400만원을 보냈다. 사기범은 B씨에게 이 돈을 자신이 보낸 것처럼 행세하면서 세금신고 문제 등을 이유로 5000만원을 다른 계좌로 보내주면 곧바로 6100만원을 이체하겠다고 속였다. 하지만 사기범은 5000만원을 입금받자마자 연락이 끊겼다.

사기범이 잠적하면서 굴삭기를 받지 못하고 돈만 날리게 된 A씨는 B씨를 상대로 54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사기범이 가로챈 5000만원은 B씨의 책임이 아니라고 보고 400만원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거래방법이 비정상적이었고, 사기범의 불법적인 의도를 인식했음에도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B씨가 사기범에게 협조한 과실이 있다고 보고 24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B씨 역시 사기범에게 속은 피해자로 볼 수 있다며 다시 결론을 뒤집었다. 400만원 이외에 배상 책임은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B씨가 굴삭기 사진과 계좌번호 등을 보낸 것은 굴삭기 매매과정에서 필요한 자연스런 일이며 이 자료가 사기 범행에 이용될 것으로 의심할 정황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B씨는 매수인이자 송금인으로 알았던 인물의 요청에 따라 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한 것에 불과하다”며 “B씨로서는 아직 굴삭기를 인도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같은 이체행위를 비정상적 거래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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