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평가의 핵심, 대학이 말하는 진로 역량은?

2024-03-06 13:00:01 게재

전공 적합성 → 계열 적합성 → 진로역량 확장 … 교과 정성평가, 성취도 및 이수 과목 눈여겨봐

재학생은 수시를 끝까지 놓지 말라는 말이 있다. 당장은 학교 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챙기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학교 교육과정을 소화하며 수능을 준비하는 재학생이 수능에만 올인하는 N수생과 경쟁해 정시로 성공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정시는 가·나·다군 3장의 원서를 쓸 수 있지만 수시는 6장의 원서를 쓸 수 있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특히 진로진학 전문가들은 정성 평가를 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주목하길 권한다. 고교 3년간 자신이 진학하려는 학과, 계열을 탐색하며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한다면 대학이 요구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는 이유다.

종합전형의 평가 요소는 대학마다 다르지만 크게 대학 교육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수학 능력을 살피는 학업 역량, 자신의 진로에 관한 탐색 노력과 준비를 엿볼 수 있는 진로 역량, 공동체의 일원으로 갖춰야 할 공동체 역량을 평가한다. 지난해부터 전공 적합성이나 계열 적합성이라는 용어 대신 진로 역량을 사용하면서 진로 탐색 경험을 비중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대학이 바라보는 진로 역량에 대해 살펴봤다.

종합전형은 학생의 역량과 잠재력을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학생부를 바탕으로 학업 역량뿐 아니라 학업에 대한 태도와 의지, 진로에 대한 관심과 노력, 자기 주도적인 활동과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정성 평가한다. 자기소개서가 2024학년 대입부터 폐지되면서 학생부로만 역량과 잠재력을 평가한다.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에는 학생이 얼마나 충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는지가 담겨 있다. 교과 수업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업을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했는지, 지적 호기심과 관심을 충족하고자 어떤 학습과 활동을 했는지,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된다. 즉, 교사가 관찰한 학생의 학교 활동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성장 과정에 대한 정성 평가가 서술돼 있다”고 설명한다.

◆평가 항목으로 살펴본 진로 역량 = 건국대 경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5개 대학은 서류 평가 요소를 학업 역량, 진로 역량, 공동체 역량으로 통일해 평가한다(표). 흔히 ‘학업 역량’은 학업 성취도·학업 태도·탐구력을, ‘진로 역량’은 전공(계열) 관련 교과 이수 노력·전공(계열) 관련 교과 성취도·진로 탐색 활동과 경험을, ‘공동체 역량’은 협업과 소통 능력·나눔과 배려·성실성과 규칙 준수·리더십 등을 포함한다. 다만, 대학마다 서류 평가 요소나 반영 비율은 차이가 있다. 5개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이 진로(계열) 역량을 중요한 서류 평가 요소로 활용하지만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은 진로 역량 대신 자기계발 역량, 성장 가능성, 잠재 역량 등으로 진로 탐색 과정과 그 경험을 통한 성장과정 등을 평가한다.

◆전공 적합성이 진로 역량으로 ‘확장’ = 5개 대학이 서류 평가 요소를 통일하면서 전공 적합성을 진로 역량으로 변경했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전공 적합성의 취지를 살리되 계열 적합성으로 개념을 확장해 학생들의 입시 준비 부담과 교사들의 진학 지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로 역량으로 변경했다”며 “진로 역량을 보는 이유는 자기 주도성을 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얼핏 보면 ‘전공’에서 ‘진로’로의 변경이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차이는 크다. 특히 진로 역량은 대학 입학 후 해당 전공을 수학할 때 필요한 기초 소양과 자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성장 잠재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장한별 서울시립대 선임입학사정관은 “서울시립대는 진로 역량이 아닌 잠재 역량으로 진로에 대한 관심이나 경험을 확장해가는 과정을 평가한다”며 “예전에는 전공에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재원 동국대 책임입학사정관도 “확실히 직업이나 전공에 대한 관심보다 진로 탐색,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험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덧붙인다.

중앙대의 ‘종합전형 서류 평가 가이드북’에서도 ‘장래희망과 학생부가 얼마나 일치하는가’가 아니라 학교생활에서 관심을 기울인 분야나 계열에 대해 구체적이고 주도적으로 탐색해본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관심 분야나 계열은 학교생활 중에 언제든 바뀔 수 있기에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경험’이라고 밝히고 있다. 진로 역량을 보여주는 학생부 항목으로는 ‘교과 학습 발달 상황’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창의적 체험 활동 상황(동아리·진로 활동)’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 등이 있다.

◆계열에 맞는 과목 선택과 학습 위계 중요 = ‘표’ 에서 보듯 진로 역량의 평가 항목은 ‘전공(계열) 관련 교과 이수 노력’ ‘전공(계열) 관련 교과 성취도’ ‘진로 탐색 활동과 경험’이다. 전공(계열) 관련 교과 이수 노력은 ‘고교 교육과정에서 전공(계열)에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한 정도’를 의미한다.

전공(계열) 관련 교과 이수 노력의 세부 평가 항목으로는 과목 선택의 적절성, 이수 과목 수, 교과목 학습 단계(위계)에 따른 선택 과목, 전공 관련 과목을 이수하기 위한 추가 노력 등을 들 수 있다. 과목 선택의 적절성은 지원 전공이나 계열별로 필요한 과목을 제시하는 대학이 있으므로 참고하면 된다.

대학과 전공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계열별로 대학의 권장 과목을 선택한 뒤 전공이나 학과에 따라 일부 과목을 추가적으로 이수하는 것도 진로 역량을 드러내기 좋다. 예를 들어 인문·사회·상경계열은 국어와 사회 과목을 중요하게 평가하지만 인문계열은 언어 과목을, 사회계열은 사회 과목을, 상경계열은 수학 과목을 추가로 선택해 진로 역량을 드러낼 수 있다.

장 선임입학사정관은 “수학이나 과학 교과는 과목별 위계가 있어 위계에 맞게 과목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하다”며 “일반선택 과목은 이수하지 않고 진로선택 과목을 이수한 경우 대학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꼭 필요한 과목이라면 소인수 과목이라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학교에서 편성되지 않은 과목은 공동 교육과정이나 온라인 교육과정을 활용하는 것도 진로 역량을 보여주기 좋다. 임 책임입학사정관도 “진로 역량에서 지원 전공이나 계열에 적합한 과목을 이수했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며 “2024학년부터 서류 평가 시 인문계열은 우선순위 교과목을, 자연계열은 5개 대학 이수 권장 과목의 이수 여부와 성취도 등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전공(계열) 교과 성취도, 진로 역량에서 비중 높아 = 전공(계열) 관련 교과 성취도는 ‘고교 교육과정에서 전공(계열)에 필요한 과목을 수강하고 취득한 학업 성취 수준’을 의미한다. 세부 평가 항목으로 전공(계열)과 관련된 과목의 성취 수준, 동일 교과 내 일반선택 과목 대비 진로선택 과목의 성취 수준 비교를 두고 있다. 교과 성취도는 학업 역량에서 비중 있게 평가하지만 학업 역량에서 전체 교과 성적을 평가한다면 진로 역량은 계열이나 진로와 관련 있는 과목의 성적을 비중 있게 평가한다. 단, 교과 평가와 달리 정량적인 등급만이 아닌 교과 학습 발달 상황의 과목별 석차등급, 성취도, 원점수, 평균, 표준편차, 이수 단위, 수강자 수, 성취도별 분포 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한다.

진로선택 과목은 성취도별 분포 비율을 고려해 성취도, 원점수와 평균, 이수단위와 수강자 수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동일 교과 내 일반선택 과목의 석차등급과 진로선택 과목의 성취도를 비교해 교과 성취 수준을 살핀다.

장 선임입학사정관은 “진로선택 과목의 성취도를 일반선택 과목과 연계해 고려하므로 학업 부담을 피하기 위해 진로선택 과목을 이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반고라면 일반선택 과목을 충실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전한다. 대학은 자연계열 지원자라면 3학년 때 이수한 과학Ⅱ의 성취도를 평가하는데, 고1 ‘통합 과학’ 등급과 고2 과학Ⅰ과목의 등급과 성취를 비교해 종합 평가한다고 밝혔다.

◆진로 탐색 활동과 경험, 창제에서 다양하게 살펴야 = 진로 역량의 평가 요소인 ‘진로 탐색 활동과 경험’은 학교 교육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성장과 결과를 의미한다. 세부 평가 항목으로는 학교교육에서 이루어진 관심 분야나 흥미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과 경험, 전공(계열)에 대한 탐색 활동과 경험 등이 있다. 즉,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 등의 창의적 체험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희망 전공과 관련이 있든 없든 자신의 관심 분야나 흥미와 관련된 활동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중요하다. 독서 활동 상황은 대입에 반영되지 않지만 교과 세특의 독서 기록은 관심 분야나 흥미를 보여주기 좋다.

이 책임입학사정관은 “학생부에 기록된 자율·동아리·진로 활동 등의 창체 활동이나 교과 수업 활동을 담은 세특 등에서 희망 전공에 대한 관심을 파악할 수 있다”며 “학생부의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진로 관련 역량을 평가한다”고 설명한다.

장 선임입학사정관도 “교과 세특이 수업 중심의 기록이라면 창체 활동에서는 다양한 경험과 관심을 들여다볼 수 있다”며 “ 같은 프로그램이더라도 진로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수 기자·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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