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화재 배상 주체는 관리자 아닌 소유자”

2024-03-11 13:00:37 게재

대법원, 원고 일부 승소 원심 확정

분당 서영빌딩 주차장 화재 책임

건물 실질 점유자가 47억 배상해야

빌딩 주차장 화재로 피해입은 임차인에게 부동산 관리회사가 아닌 사실상 해당 건물을 지배하고 있는 집합투자업자, 신탁업자 등이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동원)는 서영빌딩 화재로 피해를 본 임차인 서영엔지니어링이 집합투자업자 이지스자산운용, 신탁업자 국민은행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고 일부 승소판결한 원심(2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소송은 사모펀드가 투자한 건물의 주차장 천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피해를 본 건물의 임차인(서영엔지니어링) 등이 집합투자업자, 신탁업자, 부동산 관리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2013년 4월 투자신탁 형식의 ‘사모부동산집합투자기구’를 설정하고 신탁업자인 국민은행과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 7월 이지스자산운용 펀드는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건물(서영빌딩)을 인수했고, 같은 해 8월 건물 중 일부(6층부터 12층까지)를 서영엔지니어링에 임대(2014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했다.

이후 2015년 12월 건물 1층 주차장 천장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불이 서영엔지니어링 측 임차 부분까지 확대됐다. 이로 인해 서영엔지니어링 측 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각종 전산장비, 집기, 부품 등이 훼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건물을 임차한 서영엔지니어링은 해당 건물의 집합투자업자 이지스자산운용과 소유주 국민은행, 건물 관리회사인 에스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서영빌딩은 이지스자산운용이 투자신탁 형식의 사모펀드를 설정하고, 소유주인 국민은행과 신탁계약을 체결한 건물이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집합투자업자인 이지스자산운용과 신탁업자인 국민은행에 대한 청구는 인용, 부동산 관리회사인 에스원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자산운용사와 은행이 공동으로 서영엔지니어링에 46억4500만원을, 임직원에게는 1인당 16만~61만원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건물 관리회사를 상대로 한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한 주차장의 직접점유자로서 민법 제758조 제1항에 따른 공작물 책임을 부담하는 주체는 집합투자업자와 신탁업자라고 재판부는 봤다. 또 집합투자업자와 신탁업자가 투자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공작물 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건물의 운영과 유지 관리 등을 위탁받은 부동산 관리회사는 점유보조자에 불과해 민법 제758조 제1항에 따른 공작물 책임을 부담하는 주체가 아니라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수긍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이지스자산운용과 국민은행에 책임이 있다고 봤고 에스원 등의 책임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집합투자업자와 신탁업자가 점유자로서 부담하는 공작물 책임은 투자신탁재산의 취득·처분 등과 관련한 이행 책임이 아니므로,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만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펀드에 대해 유한책임신탁의 등기가 없는 이상 유한책임신탁으로서의 효력도 없다”며 “따라서 이지스자산운용과 국민은행은 고유재산으로도 공작물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기존 법리를 토대로 점유보조자(부동산 관리회사 에스원)는 공작물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점유보조자에게 지시하는 자(집합투자업자 이지스자산운용·신탁업자 국민은행)가 책임을 부담한다는 법리를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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