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3억위증’ 신상훈·이백순 “다시 재판”

2024-03-18 13:00:05 게재

대법 “위증죄 법리 오해” … ‘2심 무죄’ 파기 환송

“공동피고인도 위증죄 가능” … 실무자 2명 벌금

‘남산 3억원’ 불법 비자금 사건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로 기소된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이 원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이를 파기해 위증죄 여부에 대해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위증 혐의로 기소된 신상훈 전 사장과 이백순 전 행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들의 증언이 허위의 진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인정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위증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은 ‘남산 3억원’ 사건으로 함께 재판을 받던 중 변론이 분리돼 2012년 11월 같은 날 각자의 재판에 서로 증인의 지위에 서게 됐다. 이 과정에서 증인으로 증언하던 중 허위로 진술해 위증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남산 3억원’ 의혹 사건은 2010년 신한금융그룹 경영권을 놓고 경영진 내부에서 고소·고발이 이어진 ‘신한 사태’ 수사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 사건은 지난 17대 대선 직후 신한금융지주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측에 불법 비자금 3억원을 조성해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이었던 라응찬 전 회장의 지시를 받아 이 전 행장이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를 남산에서 전달했다는 것이 사건의 골자다.

돈이 남산자유센터 주차장에서 전달됐다는 사실 자체는 규명됐으나 전달자와 수령자는 검찰 재수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신 전 사장은 신한은행 창업주인 고 이희건 명예회장과 경영자문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가장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비자금 3억원을 조성하기 위해 급히 고객의 돈을 빌려 썼고, 이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비 통장을 이용해 이 중 약 2억6000만원을 갚았다는 내용이다.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은행 자금 2억600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인정돼 각각 벌금 2000만원,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신 전 사장은 이 전 행장 재판의 증인으로 나와 위증을, 이 전 행장은 신 전 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위증한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이 전 행장이 2009년 4월 이희건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 존재를 알면서도 몰랐다고 위증한 혐의를 적용했다. 신 전 사장에게는 남산 3억원 보전을 사전에 지시하고도 이를 사후에 보고받았다는 진술 등을 근거로 위증 혐의를 적용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소송절차가 분리된 상태에서, 공범인 피고인들이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았는데도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허위 진술을 했다면 위증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또 피고인의 지위가 우선하므로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방어권 범위 내에서 한 진술이므로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는지도 쟁점이다.

1·2심은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공범인 공동피고인이 다른 피고인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없다”며 공동피고인에 대한 증인적격 자체를 부정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공동피고인도 다른 공동피고인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증인이 되더라도 자신의 범죄사실에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지위가 증인의 지위보다 우선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방어권 범위 내에서 허위 진술을 했더라도 이를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증인신문 절차에서 형사소송법 제160조에 정해진 증언거부권이 고지됐음에도, 피고인이 자기의 범죄사실에 대해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허위진술을 했다면 위증죄가 성립한다는 2012년 판례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소송절차가 분리됐으므로 공범인 공동피고인의 지위에 있는 피고인들은 다른 공동피고인에 대해 증인적격이 있고,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았는데도 허위의 진술을 했다”며 “위증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두 사람의 증언이 허위인지를 판별해 유무죄를 가렸어야 하는데 원심(2심)이 이 부분을 심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심리를 거쳐 유무죄가 판단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의 횡령 사건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로 기소된 신한은행 실무자 2명은 같은 날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에서 벌금형(박 모씨 벌금 1000만원, 이 모씨 벌금 300만원)이 확정됐다. 또 함께 기소된 서 모씨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들은 지난 2018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위증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2008년 2월 당시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이었던 이 전 행장 지시에 따라 직원들이 남산자유센터 주차장에서 불상의 사람에게 현금 3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2019년 위증 혐의로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실무진인 박씨와 이씨, 서씨를 벌금형으로 하는 약식명령을 내렸다. 다만 이들이 ‘정식 재판을 받겠다’고 청구해 해당 사건은 법원으로 돌아갔고, 1심에서는 박씨와 이씨에게 각각 벌금 1000만원, 300만원을 선고했다. 서씨에게는 ‘진술이 일관되고 관련 자료가 신한은행에 보관돼 있었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이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이날 모든 상고를 기각해 벌금형이 확정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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