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거꾸로 가는 국가균형발전

2024-03-27 13:00:01 게재

여야 정치권이 22대 총선의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도권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메가시티와 철도 지하화, 광역급행철도망 연장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정책이 수도권 과밀화를 촉진해 지역소멸을 앞당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의 전망대로라면 총선 이후가 더 문제다. 국가균형발전 공약은 사라지고 수도권 개발 공약만 판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수도권 표심 잡기 급급, 구색 맞추기 그친 지방공약

국민의힘이 제기한 서울확장론(메가시티)이 시발점이었다. 서울확장론의 요지는 서울특별시에 인접 도시를 편입하자는 것이다. 여당에 불리한 수도권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서울확장론은 방향이 잘못된 공약이다. 그간 메가시티는 지방 도시들의 생존전략이자 수도권 분산전략으로 사용돼 왔다. 지난 지방선거까지만 해도 소멸위기에 놓인 지방생존의 전략으로 거론됐다.

지금도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돈과 사람을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을 더 키우겠다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을 포기하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정부여당은 서울메가시티와 함께 지방메가시티를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적·물적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서울도 커지고 지방도 커지는 방법’은 없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철도 지하화와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또한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철도 지하화는 민간자본을 유치해 주요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지하로 이전하고 상부를 개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간 철도 지하화가 실현되지 못했던 것은 재원확보 문제 때문이다. 철도 지하화의 재원을 상부 개발이익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가가 낮은 지방은 한계가 있다. 정치권은 이를 수도권뿐 아니라 대전 대구 부산 등 지방 대도시에도 적용한다는 방침이지만 결국 개발 수익이 높은 수도권 이외에는 현실화될 지역은 없다.

GTX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지난달 민생토론회에서 GTX 연장·신설 계획을 발표한 뒤로 수도권과 강원·충청권 후보들이 앞다퉈 관련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는 수도권을 촘촘하게 연결해 비수도권 인구를 수도권에 빨아들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선이나 지방선거 같은 큰 선거에서 이 같은 수도권 개발 공약에 밀려 균형발전 공약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대 총선과 21대 총선에서도 균형발전 정책은 각당의 핵심공약에서 빠졌다.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정부가 탄생한 16대 대통령선거 이후 균형발전 공약은 수도권 개발 공약에 항상 밀렸다. 2017년 치러진 19대 대선 때 균형발전은 주요공약에 들어있었지만 후순위였고, 2022년 20대 대선 때는 주요공약에서 빠져 구색 맞추는 공약으로 전락했다.

이같은 현상은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앞지르기 시작한 시기와 연관이 있다. 수도권 인구와 비수도권 인구가 역전된 것은 2019년이다. 그리고 지난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격차는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최근 행안부가 발표한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인구는 2601만4265명(50.69%)으로 비수도권 2531만1064명(49.31%)에 비해 70만명 가량 많았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면서 정치권의 모든 정책은 수도권 개발 공약으로 쏠리게 됐다. 상대적으로 표심이 약한 지방 공약은 후순위로 밀렸다.

지방소멸-수도권 과밀 악순환으로 국가 미래 흔들 것

이런 점을 고려해도 수도권 표심만 노린 정치권의 행태는 지나친 일이다. 지방소멸은 수도권의 과밀현상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국가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열악한 일자리·주거환경이 저출산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정치권과 달리 국가균형발전을 챙겨야 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치권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소멸 대책을 내놔야할 정부가 ‘정책토론회’를 빙자해 수도권 개발 공약을 쏟아낸 것이나 구색 맞추기로 지역숙원사업 몇개 들어준다는 정책토론회에 나가 맞장구를 친 지자체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2조는 ‘국가균형발전은 지역 간 발전의 기회균등을 촉진하고 지역의 자립적 발전역량을 증진하는 정책’이라고 규정한다. ‘전국이 개성있게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국가균형발전의 정신은 이제 헛구호가 됐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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