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강화방안

정부개혁 중증 편중, 예방체계도 추진해야

2024-04-02 13:00:00 게재

중증·응급 대응, 국립대·거점병원 중심 … 만성질환·생애주기별 관리, 시군구 단위에서 해결

정부가 의료개혁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완결적 의료체계 구축 작업은 국민이 거주하는 지역이 어디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크다. 서울 대형병원으로 지방 거주 환자의 원정 진료 현상은 지방소멸 문제로 이어진다. 개인들이 세우는 대표적인 노후대책 중 하나가 응급상황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이 있는 곳에 거주하는 것이 포함될 만큼 365일 응급환자를 진료처치할 수 있는 ‘좋은’ 의료기관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대도시에 집중된 대형병원과 지방 공공병원의 부실은 지역민 건강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더욱이 저출산-고령화현상으로 나타나는 응급 소아·분만-만성질환 의료수요를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지금 정부는 그동안 수십년간 누적된 부적정한 의료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광역시·도 단위 필수의료 분야의 중증-응급 대응력을 갖추는데 초점이 둔다. 전례 없는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섬세한 대안 마련을 통해 정책 추진의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방의 고령화 수준을 고려해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역민 건강관리 참여도 요구된다. 의대증원을 둘러싼 갈등을 풀어야 하는 난제가 남아 있다. ‘지역의료 강화’라는 시대 과제를 함께 논의하고 준비하는 것에 뜻을 모으면서 대립국면을 풀어나가길 기대하며 지역의료 강화 방안 찾기를 모색한다.

정부가 24시간 365일 전국 어디서나 필수의료보장을 목표로 의료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의 역할을 강화해 시도단위 지역의료 전달체계를 혁신하는 등 지역에서 중증치료를 완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방향을 세웠다.

2일 보건복지부와 병원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역필수의료는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의료기관 이용체계는 비효율적으로 그 위기를 더한다. 전문가들은 국립대병원 중심 지역의료개혁에다 만성환자관리체계를 동시에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보건소를 이어지는 공공의료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경증·만성질환자와 소아청소년부터 후기노인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 건강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논의·설계하고 재정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회장(주치의제도입 국민운동본부 대표)은 “정부가 10년 앞을 내다보며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지역필수의료분야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발생할 만성질환-치매자 증가를 예방하는 시스템 구축은 미룬듯 하다”며 “노인주치의제 도입 등 거주 지역 안에서 질환-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보건의료사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내원객으로 붐비는 병원 3월 2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내원객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정부 중증-응급환자 대응 우선 구축 = 현재 우리나라 의료는 유사한 환자군을 두고 상급종합병원(난이도 높은 수술 등을 행할 수 있는 종합병원)과 동네의원이 무한 경쟁하는 상황이다.

이번 전공의들이 이탈한 수련병원·상급병원의 40% 이상이 중증도가 낮은 외래환자임이 드러났다. 평균 진료시간 4분이고 중증 진료와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다. 1차(동네의원)-2차(병원)-3차의료기관(종합병원) 별 기능정립이 미흡해 종합병원 중 상급병원을 선호해 중증응급환자가 상급병원으로 몰려 제때 치료를 놓치는 문제까지 낳는다.

서울 대형병원 쏠림은 심화되고 지역 필수의료 공백 커졌다. 결국 지방 암환자 30%가 서울 상급병원에서 진료하고 지역은 의료인력난에 환자는 감소하고 나아가 응급-외과수술 등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 등은 “지역·필수의료 붕괴 위기 극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고 인식하고 국립대병원 역량을 수도권 대형병원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높이는 등 지역필수의료 강화에 나섰다. 중환자실·응급실 병상-인력 확보, 사회적 필요도는 높으나 수익성이 낮은 소아 분만 등 필수의료센터에 건강보험 재정을 더 지원한다. 관련해서 정부는 5년 간 10조원 이상을 들여 정책을 추진한다며 의지를 비쳤고 내년도 예산안 마련에 필수의료분야를 중점 투자대상으로 정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달 29일 ‘지역의료 강화방안’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지역의료는 고사 직전의 위기 상황이고 지역소멸과도 직결된 문제”라며 “정부는 필수의료 특별회계, 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 등 과감한 재정 투자를 통해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지역완결 필수의료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전 정부들에서 없었던 지역필수의료 강화 추진 계획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역에서 24시간 365일 응급-중환자를 대응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병원을 갖춰야 하고 지역의료강화에 지방자치단체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시간 365일 대응 지역체계 갖춰야 =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응급의료부터 지자체 책임 하에 해결 방안을 모색하되 지자체와 의료계, 지역 주민이 합의해 만든 응급의료서비스는 별도 계정을 통해 재정 지원을 하자”고 제안했다. 의료 질을 담보하기 위해 최소 시술량을 기반해 공급계획을 세우고 최소 시술량 미달 지역은 원격 기술을 적극 활용하자는 방안도 냈다.

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지방의료원은 지역책임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불명확한 미션과 비전, 열악한 시설 규모와 취약한 입지, 부족한 정원과 인력, 독립채산제와 취약한 재정 등의 이유로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지방에 의사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복지를 제공해 대우를 개선하는 방법이 있지만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 등과 같은 제한적 정책은 불가피하다. 다른 여러 나라도 이미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41개 지역거점병원의 진료과목별 전문의 수를 기관당 평균으로 계산하면 내과 5.5명, 응급의학과 3.9명, 정형외과 2.2명, 영상의학과 2.0명이고 신경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은 기관당 전문의 수가 2명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흉부외과는 기관당 평균 전문의가 0.4명에 그친다. 코로나19 전담병원 활동 장기화로 지방의료원 병상 가동률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료원의 부실함은 지역의료 공백에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노인주치의제 도입으로 지역의료혁신 = 지역의료 강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분야는 경증-만성질환자 진료와 생애주기별 건강관리체계 갖추기다. 이 분야의 부실함은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자와 암-치매환자, 만성질환자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는 국내 고령화 추세는 지역사회에서 주치의제적 건강관리체계 구축을 요구한다.

조 원장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시군구 단위에서 ‘포괄일차전문의 개원을 지원하고 분야별 전문의 개원 억제와 주치의제 도입 등 일차의료분야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선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은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본 노년기 건강 불평등과 노후 건강보장 방안(2023.12)' 보고서에서 “지역주민이 의료자원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생활인구 밀집도 등을 고려해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고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재택의료, 방문진료, 병원안심동행 서비스 강화 확대가 필요하다.

생애 이른 시기부터 건강한 생활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부연구위원 등은 “노쇠 발생을 억제·지연하기 위해 아동기부터 생애주기별로 신체 활동량 증가, 고른 영양섭취 등 건강한 생활습관 형성, 만성질환 조기 발견과 관리 등 목표를 세우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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