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회계당국, 외국 회계법인에 최대 규모 제재금

2024-04-15 13:00:01 게재

네덜란드 KPMG에 2500만달러

임직원들 ‘내부테스트’ 정답 공유

내부통제에 ‘심각한 결함’ 판단

국내 회계법인들도 검사·제재 가능

미국 회계감독당국인 PCAOB가 외국 회계법인의 내부통제 부실과 관련해 역대 최대 규모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14일 금융당국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 등에 따르면 PCAOB는 글로벌 빅4 회계법인(PwC KPMG Deloitte EY) 중 하나인 KPMG의 네덜란드 사업부에 대해 2500만달러(한화 약 346억원)의 민사제재금을 부과했다. 감사부문 대표인 마크 호게붐(Marc Hogeboom)에 대해서도 15만달러의 제재금이 부과됐다.

2500만달러의 제재금은 PCAOB가 허위 감사보고서 발행과 감사 위반 은폐 시도 등의 혐의로 지난 2016년 딜로이트 브라질 사업부에 부과한 역대 최대 제재금 800만달러를 훨씬 넘어서는 규모다.

KPMG 네덜란드의 혐의는 ‘내부훈련 테스트 관련 품질관리 규정’ 위반이다. 해당 테스트는 미국 회계감사기준 및 회계기준(U.S. GAAP), 직업윤리 및 독립성 관련 주제를 다루는 회사의 필수 교육 과정이다. 감사인이 특정 유형의 감사를 수행하기 위해 전문 인증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PCAOB 조사결과 2017년부터 2022년 사이에 KPMG 임직원 수백명은 전자적인 수단을 이용해 사전에 정답을 부당하게 공유하면서 실제 시험응시 시점에 이를 부당하게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감사부문 대표인 호게붐 등 법인 최고 경영진들은 이같은 부당 행위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묵인하거나 방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인은 2022년 내부 고발 이전에 이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고, KPMG 네덜란드의 CEO인 스테파니 호텐하우스(Stephanie Hottenhuis)는 PCAOB에 제출된 내용이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몇 달 후 두 번째 내부 고발자가 나올 때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호게붐에 대한 제재금액은 PCAOB가 개인에게 부과한 가장 큰 규모의 제재금과 같다. PCAOB는 뉴욕에 본사를 둔 ‘Spielman Koenigsberg & Parker’의 감사 파트너에 대해 지난 2022년 15만달러를 부과한 바 있다.

PCAOB는 제재금 부과에 그치지 않고 호게붐이 향후 등록 회계법인에서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영구적 금지조치를 취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수석 회계사였던 로이 반 브룬트는 “2500만달러의 벌금은 빅4 회계법인에게 상당한 억지력으로 작용하기에는 너무 적은 금액”이라며 “다만 임원의 영구 금지는 진전된 신호”라고 말했다.

KPMG는 지난해 9월 마감된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전 세계 매출이 360억달러(약 49조원)라고 밝혔다.

에리카 윌리엄스 PCAOB 의장은 “PCAOB는 시험 부정행위나 기타 비윤리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패한 윤리는 신뢰를 약화시키고 우리 시스템이 의존하는 투자자의 신뢰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제재는 ‘정답공유’에 대한 PCAOB의 9번째 사례로, 앞으로 강한 제재를 취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KPMG와 호게붐은 제재 조치를 수용하기로 했다. KPMG는 앞으로 법인의 품질관리 관련 내부통제를 점검·개선하고 이를 PCAOB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미국 회계당국이 다른 국가의 회계법인을 제재할 수 있는 것은 법적 근거와 국가간 합의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02년 회계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경영자 책임 및 내부통제시스템 강화, 감독당국에 의한 회계감독실시 등을 골자로 한 기업회계개혁법(Sarbanes-Oxley Act)을 제정했다. 해당 법률에는 미국 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의 회계감사를 담당하고 있는 회계법인은 의무적으로 PCAOB에 등록을 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도록 돼 있다.

한국도 2007년 금융당국이 PCAOB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PCAOB가 미국 상장회사를 감사하는 한국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양해각서 체결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국내 5개 회계법인에 대해 총 24회 공동검사가 실시됐다.

PCAOB에 등록된 한국 회계법인(13개)들도 내부통제에 심각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상당한 규모의 제재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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