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감사·비위…글로벌 빅4 회계법인 ‘신뢰 하락’

2024-04-22 13:00:02 게재

호주 공무원 57% “향후 이용 안할 것” … 응답률 올해 첫 과반 넘어

글로벌 빅4 회계법인(PwC KPMG Deloitte EY)들이 주요 국가에서 잇따른 부실감사와 비위행위 등으로 신뢰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영국에서 빅4의 상장회사 감사시장 독점을 해소하기 위한 광범위한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호주에서도 빅4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2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최근 호주파이낸셜리뷰(AFR)는 리서치기관인 ‘베이튼’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호주 공무원 응답자 중 57%는 향후 빅4 회계법인의 이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올해 처음으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빅4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지난해 응답률 43% 보다 14%p 상승했다.

지난해 호주에서는 PwC의 조세 스캔들이 발생해 파장이 컸다. 호주 PwC의 전 파트너가 계약 수임을 위해 호주정부에 대한 재무 컨설팅 과정에서 확보한 조세제도 관련 기밀을 민간 기업 고객사에 제공한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호주정부는 지난 2년간 조세·회계 컨설팅 관련 수임료로 PwC에 3억달러 이상을 지급하는 등 호주PwC의 최대 고객 중 하나다. 지난해 호주연방준비은행(RBA)은 조세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호주PwC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호주연방기관들은 빅4와의 거래를 줄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컨설팅 비용은 2180만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 3680만달러에서 크게 감소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정부 계약에 국한되지 않고 있으며 빅4에 대한 신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객들 사이에서도 약화되고 있다. 지난해초 호주 중소기업 고객 54%는 빅4 중 한 곳을 주요 컨설팅업체로 신고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비율은 절반인 26%로 줄었다.

빅4의 신뢰 약화는 중소형 회계법인들에게는 상당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베이튼’ 조사에서 기업들은 동일한 업무라도 높은 신뢰를 줄 수 회계법인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빅4가 정부와 기업 고객들의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는지 여부다.

AFR은 “이번 베이튼 조사결과에 따르면 회계법인의 전문성과 신뢰성, 배려는 고객 회사와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라며 “고객은 또한 회계법인이 고객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보다 우선시하는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AFR은 또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회계법인은 이 4가지 특성에 대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회계감독당국인 PCAOB는 빅4 중 하나인 KPMG의 네덜란드 사업부에 대해 외국 회계법인 중에서는 역대 최대 민사 제재금인 2500만달러를 부과했고, 영국에서는 그동안 소매업체 BHS, 아웃소싱 업체 Carillion, 여행 그룹 Thomas Cook을 포함한 대형 상장기업의 잇따른 파산으로 빅4의 부실감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영국 정부는 과도한 빅4 중심의 감사 시장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이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영국 금융당국으로부터 KPMG 13번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Deloitte와 PwC는 각각 6번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한국에서도 빅4의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빅4 매출액은 2022회계연도 기준 2조8219억원으로 회계법인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5%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단행된 회계개혁 이후 중소형 회계법인의 감사품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시 빅4 중심으로 회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외부감사인 지정’을 빅4로 제한하는 금융당국의 ‘감사인 지정제 보완방안’이 2022년 시행됐고, ‘자산 2조원 미만 상장사의 연결 내부회계 외부감사 도입’도 5년간 유예되면서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감사품질 개선을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매출 하락에 따라 전문인력 영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견회계법인의 한 대표회계사는 “빅4 중심의 과점 체제는 시장경제에 도움이 안된다”며 “빅4를 대체할 수 있는 회계법인들을 육성해야지만 기업들의 선택지가 빅4로 제한되는 현재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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