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중간계좌서 결제 “반환해야”

2024-04-22 13:00:08 게재

1·2심 원고 패소 … 대법, 파기환송

부당이득반환의무 부정 원심 파기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다른 사람 계좌로 보낸 돈이 카드(중간계좌) 대금으로 자동 결제됐다면 피해자에게 이를 반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A씨가 가상계좌 피해자 피고 B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는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 제1항에서 정한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고(피해자) A씨는 지난 2021년 10월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자신의 휴대전화에 원격조종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이후 보이스피싱범은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해 A씨 계좌에서 피고 B씨의 은행 가상계좌로 100만원을 이체했다. 카드대금 납부 목적의 가상계좌인 이 계좌에 입금된 돈은 B씨의 카드결제 대금으로 정산됐다. B씨 가상계좌를 거쳐 돈을 가져가려던 보이스피싱범은 결국 아무 금전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 꼴이 됐다.

A씨는 보이스피싱범이 아닌 또다른 가상계좌 피해자 B씨를 상대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부당이득제도는 이득자의 재산상 이득이 법률상 원인을 갖지 못한 경우에 공평·정의의 이념에 근거해 이득자에게 그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며 “이득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귀속된 바 없다면 그 반환 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 A씨가 송금한 돈이 피고의 계좌로 입금됐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고가 해당 돈 상당을 이득했다고 하기 위해서는 피고 B씨가 돈을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까지 이르러 실질적인 이득자가 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며 “원고 A씨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원심이 지난 2017년 ‘부당이득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이익을 얻은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채무를 면하는 경우와 같이 재산의 소극적 증가도 이익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기록에 의하면 피고 B씨에게 부여된 카드결제대금 가상계좌로 원고 A씨의 100만원이 이체됐고, 그 돈으로 B씨 명의로 결제된 물품대금 정산이 완료돼 피고의 신용카드대금 채무가 소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B씨는 자신의 신용카드대금 채무 이행과 관련해 가상계좌로 송금된 A씨의 돈으로 법률상 원인 없이 채무를 면하는 이익을 얻었으므로 A씨에게 그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B씨가 얻은 이익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이 가상계좌로 송금돼 자신의 채무를 면하게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B씨가 이체된 돈을 사실상 지배했는지는 부당이득 반환의무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B씨가 이체된 돈을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지 못해 실질적인 이득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이득 반환의무를 부정한 원심 판결에는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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