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개정 도서정가제 원년, 지역서점엔 '골든타임' ③

"아이들 지역에서 함께 키워요"

2015-02-27 14:57:29 게재

일산 알모책방, '지역 문화 거점' 역할 … "생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알모책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첩 알모의 아이들 . 사진 이의종
'알모의 아이들'

25일 일산 마두동 어린이서점 알모책방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첩 '알모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알모책방을 이용하면서 성장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연도별로 묶어 놓은 사진첩이다. 최영미 알모책방 대표는 "한 아이가 책 읽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어 선물해 줬던 것이 계기가 됐다"면서 "아이들 별로 폴더를 만들어 사진을 관리하고 선물하는데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보물"이라고 말했다.

알모책방에선 서점주인과 지역주민들이 유통업체 대표와 소비자가 아닌, '지역 커뮤니티 구성원'으로 만난다. 이 곳의 책들은 모두 최 대표가 먼저 읽고 추천한다. 부모와 아이들은 서점에 들르면 자연스럽게 최 대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책을 고른다. 최 대표는 주민들의 이름과 얼굴은 물론 좋아하는 책 종류를 기억해 추천해 준다.

늘 시끌벅적한 것도 알모책방의 특징이다. 이날 오후 시간 내내 제법 큰 목소리로 "우당 쿵탕탕"이라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계속돼도 누구 하나 "시끄럽다"고 제지하지 않았다. 지역의 아이들을 제대로 한번 키워내겠다는 알모책방의 의지다.

알모책방에선 다양한 모임들이 '책'과 '문화'를 매개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30평 규모의 서점에는 낭독회, 글쓰기 등이 가능한 개별 공간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들은 이 곳에서 '새책평가단'으로 활동,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해당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성인들의 모임도 활발하다. 최근엔 10여명이 모여 '반지의 제왕 책읽기 모임'을 만들어 9개월에 걸쳐 '반지의 제왕'을 읽어냈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당일 모여 낭독을 하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번역이 이상하다 싶으면 영어 원문을 찾아봤다.

'닥치고 글쓰기 방'에서는 무엇이든 쓰고 싶은 사람들이 신청을 하면 3시간씩 이용할 수 있다. 조용한 공간에서 창작을 하든 필사를 하든 자유다.
알모책방은 지하에도 공간을 마련, 좌식으로 둘러앉아 소통할 수 있게 꾸몄다. 이날은 지하 공간에서 알모책방 나눔장터가 열렸다. 최 대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모았던 영어 원서와 기증받은 옷 등을 판매, 수익금을 알모책방 운영에 보태려는 것이다. 책을 고르려는 엄마와 아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터를 찾은 아이들은 이런저런 책과 옷을 고르며 연신 "(알모책방이) 좋아요"라면서 즐거워했다. 친구의 소개로 아이와 먼 걸음을 한 서은정(42)씨는 "이런 곳이 가까운 데 있으면 자주 방문하고 싶다"면서 행복한 표정이었다.

알모책방이 좋아요 25일 알모책방 지하 공간에서 나눔장터가 열렸다. 장터를 찾은 아이들은 이런저런 책과 옷을 고르며 연신 알모책방이 좋아요 라면서 즐거워했다. 사진 이의종

23일엔 '이태수 작가와의 세밀화 워크숍'이 열렸다. 알모책방은 이 모든 행사들을 SNS로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최 대표는 "지난해부터 특별히 알모책방이 제안하지 않더라도 이용하는 주민들이 나서서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알모책방은 '흑자'"라고 말했다.

다양한 해외 서점들을 탐방하고 벤치마킹하는 것도 알모책방의 장점이다. 기회가 있을 때면 미국의 지역서점들을 탐방하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수정해 국내에 도입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좋은 어린이 서점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운영하는 서점"이라면서 "지역의 문화 거점으로 기능하는, '이상적인 서점'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모책방도 늘 '생존'에 대해 고민한다. 2008년 문을 연 이후, 최 대표는 자신의 인건비를 포기하고 때론 적자를 메워가며 운영해 왔다. 그나마 맞벌이를 하기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23일 알모책방에서 이태수 작가와의 세밀화 워크숍 이 열렸다. 주민들이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다. 사진 알모책방 제공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공공도서관 납품에 기대를 걸었던 최 대표는 대형서점의 일산점도 지역서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책 판매량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최 대표는 "문을 연지 얼마 안 돼 운영이 너무 힘들어 접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 미국의 다양한 지역서점과 그 서점의 활동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었다"면서 "개정 도서정가제를 시행한 이후에도 서점 운영은 잘 안 돼 월세 내기에 근근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점이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에 합당한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지역서점 지원 사업에 선정돼 500만원을 받아 시설을 고치고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면서 "그런 지원이 보다 확대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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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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