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신용등급 상향'에 위기의식 사라지나

2015-09-22 10:50:19 게재

박 대통령 "경제활성화 구조개혁 인정" … S&P, 외환위기 직전까지 AA- 유지하기도

청와대가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한 것을 두고 들뜬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S&P 발표 직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것이) 밖에서 우리를 보는 척도가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이번 재평가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상향조정됐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S&P가 발표한 지 1주일 쯤 지난 21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또 꺼내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에게 "세계적 신용평가사에서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면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 노력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고 자평했다.

박 대통령은 "S&P도 인정했듯이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비관론'을 비판했다. "지나친 비관과 비판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양호한 대외건전성 △성장세 유지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꾸준한 구조개혁 추진 △한반도 긴장 완화 때문이라고 자가진단했다.

◆S&P가 지적한 위험들 = 청와대가 S&P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올리면서 수많은 위험요인들을 짚어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P는 우리나라 성장률이 '선진국'에 비해 높다는 점을 지목했다. 아직 성장가도에 있어야 할 우리나라가 늙은 경제로 알려진 선진국들과 비교해 선전했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비교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떨어져 '늙은 경제'로 전락, 저성장국면에 들어섰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S&P가 1인당 실질GDP성장률이 연 3%에 그쳐 1인당 GDP가 올해는 2만7000달러로 현 정부내에선 3만달러 달성이 어렵다고 내다본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게다가 S&P발표문에 포함되지 않은 경고들이 수두룩하다.

S&P가 신용등급 조정 발표 5일전인 이달 10일 한국에 들어와 연 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걱정거리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킴 엥 탄 S&P 아태지역 정부신용평가 팀장(상무)는 '국가신용도 개선을 위한 구조적 선결과제'와 관련한 발표에서 '노동가능인구가 곧 정점을 지나고 현재의 저축률 유지가 어려우며 정책변화가 없다면 정부부채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북리스크가 국가신용도에 잠재적 위협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공공금융기관의 부실가능성도 우려했다.

권재민 S&P 아태지역 기업신용평가 총괄(전무)은 한국기업이 사면초가에 빠져 중장기적으로 신용도 하락 압박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경쟁 심화에 따른 제품매력도 저하, 내수침체와 대외환경악화에 따른 저성장, 운영효율 개선 정체와 환율 변동성 심화에 따른 저수익성,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낮은 신용도가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순차입금 증가세, 영업현금흐름과 기업유동성의 지속적 악화도 신용도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이언 창 S&P 한국 금융기관 신용평가 본부장은 우리나라 은행들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가계부채가 잠재적 위험요소를 부상하고 있는 점을 들어 "중장기적으로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외환위기 직전에도 AA- 등급 매긴 신용평가사 = 신용등급이 올라간 것은 조달비용이 적게 들고 국내투자자를 유치하기 쉽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지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미래의 위험에 대한 세계신용평가사의 평가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것은 수차례 드러났다.

20년 전인 1995년에 S&P는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A+(긍정적)에서 AA-로 올렸다.

여기에서 A+로 겨우 한단계 하향조정한 것은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석달전인 1997년 8월이었다. 이후 넉달만에 네 차례에 걸쳐 10단계 밑의 투기등급인 B+로 떨어뜨렸다. 경고는 없이 뒤늦게 위기를 반영하는 모습이었다.

신용평가기관의 예측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외환위기 뿐만 아니라 지난 글로벌금융위기 때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4번이나 만나 설득하면 먹힐 정도로 '정치적'이기도 하다.

기업 투자자들에게 투자정보를 판매한다는 점, 정부의 지표제공이 원활해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 등으로 친투자자, 친정부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지금은 위기시점 = 우리나라 경제는 S&P 지적대로 '사면초가'다. 위기일수록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개혁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박 대통령과 정부의 말대로 신용등급 상향조정이 박근혜정부의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박 대통령이 제대로 하지 못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소통과 통합, 한반도 평화구축 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박 대통령은 "당연히 긴장감을 가지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이번 계기로) 경제체질을 바꾸고 혁신을 이뤄서 제2의 도약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는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연말까지, 또는 남은 임기 2년반동안 이뤄내려는 것을 위험한 신호로 읽고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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