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 워싱턴에 '은근한 한방'

2019-04-26 11:26:03 게재

김정은, 고립론 불식

푸틴, 한반도 문제 훈수

결과 없지만 압박카드

25일 열린 북러정상회담은 회담결과와 상관없이 만남 자체로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 외교적 고립상태에 빠져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다시 국제무대로 나왔고,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외신들도 이번 두 정상의 만남이 구체적 합의는 없었지만 워싱턴을 향한 '은근한 한방'이 됐다고 평가했다.

AFP 통신은 "푸틴은 평양이 안보와 주권 보장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면서 워싱턴이 북한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데 대해 은근히 한 방을 먹였다(took a veiled swipe)"고 해석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측에 자신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했다"고 밝힌 것을 두고 외신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뚜렷한 신호를 미국에 보냈다"며 "핵 회담에서 역할을 하길 열망하는 러시아에 이번의 화려한 정상회담은 전 세계에 러시아의 정치적 지배력이 커지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기 전에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안전 보장을 원했는데 푸틴 대통령이 "북한은 주권이 유지될 것"이라고 확언을 해줬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핵 교착' 해결을 위해 푸틴의 도움을 구했다"며 "푸틴으로서는 김 위원장을 초대한 것이 주로 미국과 중국이 형성해온 안보 논의의 한 '플레이어'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AP 역시 "푸틴은 (북러정상회담) 논의 내용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유하겠다는 의사를 강조했다"며 "푸틴에게는 이날 회담이 잠재적인 브로커 역할을 증대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늘 회담은 김 위원장이 국내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게 했으며, 자신의 정권이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영국 공영 BBC방송은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강력한 동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분석하면서 "푸틴 대통령 역시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다소 소외됐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기를 희망해왔다"고 전했다.

영국 보수 일간 더타임스 역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푸틴 대통령이라는 또 다른 인물에게 구애하면서 북한에는 다른 친구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덴마크 TV2 방송은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적 승리로 간주된다"면서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만난 뒤 미국에 대해 더 강력한 입지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 공영방송인 NOS도 '푸틴과 김(정은) 성과 있는 대화 나눠'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푸틴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미국, 한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김 위원장의 노력을 지지했다"면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조처를 하려고 하지만 안전보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일부 외신들은 구체적 합의가 없는 상징적인 성과만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러시아의 참여로 비핵화 협상판이 더욱 복잡하게 꼬일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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