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겨냥 환율전쟁? "근거 미약"

2019-06-25 11:42:41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ECB의 유로존 성장 부양은 정당한 업무"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하락 막기 위해 시장세력과 싸워"

전쟁이 시작되는 때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한 나라의 군인과 탱크, 전투기가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어가면 대개 전쟁이 시작된 걸로 본다. 그러나 환율전쟁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일단 환율전쟁이 무엇이냐부터 확실한 정의가 없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유럽과 아시아가 환율을 조작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트위터에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통화부양책을 쓰기로 하면서 달러 대비 유로화의 가치를 즉각 떨어뜨렸다. 이는 미국에 대해 손쉽게 가격경쟁력을 얻으려는 불공정한 처사다. 유럽은 중국 등과 함께 수년 동안 부당하게 환율에 손댔지만 처벌받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 19개 회원국의 경제전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ECB는 추가적인 통화부양책을 쓰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2가지 측면에서는 옳다"고 지적했다.

우선 유로화는 1년 전에 비해 달러 대비 가치가 하락했다. 전년 동기 1유로당 1.16달러였지만 최근 1.12달러대다.

둘째 유로화 약세로 유로존 수출품의 해외 가격경쟁력은 높아지고 미국과 다른 나라 수입품의 유로존 내 가격경쟁력이 낮아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BBW는 "경제학자들은 '드라기 총재가 잘못된 일을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ECB가 기업과 소비자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면서 유로존 내 경제성장을 부양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금리인하는 유로화의 가치를 낮추게 돼 추가적인 부양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는 부수적 효과이지 목표가 아니다. 드라기 총재는 18일 "ECB는 환율을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로화 평가절하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악화시켜 미국 실물경제를 둔화시킨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 역시 경제성장을 부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부수적으로 달러가치를 낮추게 되고 유로화 대비 환율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게 된다. 하지만 유로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달러의 평가절하는 금리인하의 부수적 효과이지 기본목표가 아니다.

교역국들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낮춰 환율이 애초 수준으로 회귀하게 되면 마치 제로섬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인 브래드 셋서는 최근 리서치 노트에서 "통화정책을 전반적으로 완화하면 양국 모두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며 "원칙적으로 자국 내 수요를 자극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BW는 "중국이 환율을 조작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유로화에 대한 주장보다 더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중앙은행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를 낮추기는커녕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세력과 싸우고 있다. 중국의 1년만기 기준금리는 2015년 10월 이래 4.35%로 고정돼 있다. 금리인하가 당연해 보이는 경제둔화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그렇다.

또한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눈에 띄게 상승하지도 않았다. 만약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를 낮추려고 한다면, 위안화를 내다팔고 달러자산을 사들였어야 한다. 셋서는 "여러 증거를 보면 중국은 환율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 소재 '배녹번 글로벌 포렉스 LLC'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챈들러는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중국 지도부는 단기적인 경제부양 효과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위안화 약세를 원치 않는다"며 "중국의 장기 목표는 부가가치 체인을 질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며 자국민들에게 '열심히'가 아니라 '스마트하게' 일하자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안화 약세를 통한 가격경쟁력은 중국이 과거의 저사양 기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불공정한 환율조작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BBW는 "숨길 수 없는 증거는 무역수지나 투자수지에서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가 외환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경우"라고 전했다. 중국은 2014년 초까지 그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 싱가포르나 한국, 대만 등도 최근 몇년 간 통화가치를 억누르기 위해 여러 차례 시장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셋서에 따르면 현재 환율에 개입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로 대만이 지목되고 있다. 대만중앙은행은 5월말 기준 4640억달러어치의 외환을 보유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브라질과 독일, 인도와 같은 거대 국가들의 보유량보다 많은 수준이다.

BBW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엉뚱한 나라들을 비난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는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해 굉장히 광범위한 시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럽과 중국 등에 대한 비난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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