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예술인 권리보장법, 적극적으로 해석·준수해야"

2021-09-30 11:48:02 게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미투 운동' 배경 … 피해구제 위원회·보호관 관련 시행령 제정 중요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 예술인 권리보장법 입법추진 TF위원/전 새문화정책준비단 위원/전 새예술정책 TF 위원 사진 이의종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만들어진 취지와 배경은 무엇인가.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미투 운동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배경에서 출발했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부터 드러난 블랙리스트 사태는 국가의 행정조직과 재정지원사업을 악용해 민주주의와 문화정책의 근간을 뒤흔든 국가범죄로 유례가 없는 신종 예술탄압의 형태로 국제보고서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이에 피해 예술인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이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피해자 구제조치 등을 요구했고 정부 차원에서 블랙리스트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을 약속했다.

또한 2016년에 문화예술계로부터 시작된 SNS의 미투 운동이 각계각층으로 널리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범정부대책이 발표됐다. 여기서 문화예술계의 성희롱·성폭력 방지 대책이 독립적으로 제시되고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이 대책으로 포함됐다. 기존 사업장 기반 성희롱·성폭력 정책으로는 문화예술계와 같은 비사업장 기반, 즉 프로젝트 기반 계약 종사자들은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존 법제로 해결할 수 없는 긴급하고 중대한 사안들에 대한 대책으로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이 출발했다. 1980년 유네스코의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를 토대로 그 틀을 마련했다. 법률의 제정이 촉발된 계기가 블랙리스트 사태와 미투 운동이었던 만큼 광범위하고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토론, 연대와 협력을 통해 법률 제정에 이르게 됐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 표현의 자유 보장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 등 3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술표현의 자유 보장과 성희롱·성폭력 방지뿐 아니라 직업적 권리의 보호 및 증진이 포함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미투 운동에 관한 각종 토론회를 통해 거듭 확인된 점은 이 이질적인 사태들의 공통 조건인 직업적 권리 보장의 취약함을 개선하는 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술인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불안정성을 아우르는 직업적 권리의 취약함이 지속되는 한 블랙리스트 사태나 성희롱·성폭력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사태의 특징과 유형을 토대로 공공 영역에서 예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예술인복지정책을 넘어선 직업적 권리 보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또 성희롱·성폭력의 금지 및 피해구제 조치 등이 핵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법의 총칙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피해구제 조치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예술인의 정의를 확대해 교육·훈련 과정에 있는 예비 예술인까지 포함했다. 성범죄를 비롯해 각종 권리침해 행위에 가장 취약한 이들을 포함하는 것이 이 법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예술인의 역할, 국가기관 등의 책무 등이 총칙에 담겼다. 이 조항들은 향후 이 법의 적용과 해석, 정책 전반의 수립·실행에서 지침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로 예술 표현의 자유를 다양하고 창조적인 예술활동의 조건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보호할 것, 예술인을 문화권을 가진 국민이자 문화국가 실현·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존재로 존중할 것, 노동과 복지에서 다른 직업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할 것, 성평등한 예술환경에서 활동할 권리, 예술인이 예술정책의 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규정했다. 이어 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기관 등의 책무를 별도 조항으로 마련했다. 예술 검열의 금지, 예술지원사업에서의 차별 금지, 예술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등이 함께 적시됐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시행되면 어떤 실효성이 있나.

이 법의 실효성은 첫째, 권리침해 및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피해구제 및 시정 조치에서 직접적으로 찾을 수 있다. 법률 초안에는 형사처벌 조항들을 담고 있었으나 검토 과정에서 삭제됐다. 그렇지만 신고·조사·분쟁조정·시정명령·재정지원 중단 등 일련의 구제 및 시정 조치를 정하고 있다. 관계기관에 대한 수사의뢰, 행정처분, 권리침해자 및 성희롱·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징계 요청을 내용으로 하는 구제조치 조항도 별도로 마련됐다.

둘째, 예술인권리영향평가, 예술인조합 활동방해 금지, 예술인 권리보호 및 성희롱·성폭력 방지 관련 정부 시책 마련 의무화 등과 같이 기존에 미비했던 예술인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술인의 정책결정과정 참여의 권리를 실질화하기 위한 위원회 설치와 운영, 구제조치와 예술인정책의 실행을 위한 예술인보호관 직제의 근거 조항을 마련했다.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을 위해 어떤 내용들이 포함됐나.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계의 성범죄에 관한 최초의 법률이다. 기존의 관련 법률들이 예술인이나 예술환경에까지 미치지 못했던 까닭에 이 법의 제정 의의는 크다.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의 장을 별도로 마련했다. 예술활동에서의 성차별 금지,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예술인은 물론 예술인이 아닌 사람이 예술인에 대해 성희롱·성폭력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법에 따른 구제 및 시정 조치가 이뤄지게 된다.

그 외에도 정부에 의한 예술인 대상 성희롱·성폭력 방지조치 마련 의무화, 2년마다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실시, 예방 및 피해구제 지원기관의 지정에 관한 조항들이 포함됐다.

■시행령 제정과 관련해 중요한 사안은 무엇인가.

총 41조에 이르는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내용이 광범위한 만큼 시행령에 위임된 사항이 적지 않다. 그 위임사항들에는 새로운 제도 설계와 관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또 구체적인 행정행위를 규정하는 시행령에서 정하는 사항들이 정책의 일상적 체감도 차원에서는 더 크다. 따라서 시행령의 제정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이다. 예술인들의 정책결정과정 참여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시행령 제정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법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속으로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예술인 관련 정책 전반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지니게 되는데 그 구성·운영에 관한 사항이 시행령에 위임돼 있다.

이 위원회의 위상과 운영이 형식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보다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심도 있는 연구·논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따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예술인보호관의 자격·직무·권한, 보호관 업무를 보조하는 담당관, 보호관 제도 운영에 관한 사항 등도 시행령에 위임됐다. 정책 당사자인 예술인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법의 제정 취지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실질적 권한과 운영에 관한 사항들이 결정돼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법률의 적극적인 준수·해석·적용일 것이다. 법률 제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예술인들의 숙원으로 제정된 이 법률의 실효성 여부는 법률의 처벌 조항이나 행정 제재의 강도가 아니라 법 제정의 취지와 각 조항의 의미를 숙지하고 충실히 이행하려는 노력에 달려 있다. 특히 국가범죄로 규정되었던 블랙리스트 사태를 배경으로 한 이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각종 지원기관과 교육기관에 대한 공적 책무를 엄중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를 인식하고 그에 부응하는 법 해석과 적용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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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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