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현장보고

미국경제 '뜨거운 고용'과 '유가·물가 급등' 사이

2022-03-08 10:43:34 게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면 공격 사태가 지구촌 경제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경제지표들이 나온다. 미국경제를 지탱하는 고용이 여전히 호조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일자리가 안정되어야 국민들이 돈을 쓸 수 있고, 소비지출에 70%를 의존하는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

미국 전역의 휘발유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지난 4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의 한 주유소는 갤런당 5달러가 넘는 휘발유 가격을 게시했다. 사진 AFP=연합뉴스


4일 발표된 미국의 2월 실업률은 3.8%로 전달 4%에서 0.2%p 하락했다. 특히 2월 한달 동안 무려 67만8000개의 일자리를 늘리는 기염을 토했다. 44만개 증가를 예상했던 경제분석가들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은 좋은 성적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 일자리 증가는 58만8000개, 올 1월은 48만1000개로 두달 동안 9만2000개 일자리가 더 늘어난 것으로 수정됐다.

이로써 미국경제는 최근 3개월 동안 한달 평균 58만2000개의 일자리를 늘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던 2020년 4월 이래 현재까지 2000만개 일자리가 회복됐다. 약 200만개 일자리가 모자란 수준이다.

미국의 고용시장이 오미크론 변종바이러스와 물가급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호조세를 이어가면서 소비와 지출에 기반한 미국경제의 성장도 촉진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2월 고용지표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과 이에 따른 러시아 제재의 여파가 반영되지 않았다.

아울러 3월 중순부터는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때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고된 상황이다. 미국 내 사업주들과 소비자들이 향후 소비지출을 줄여 경제성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 전쟁으로 유가·물가 급등 악재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면 공격으로 확대되면서 국제유가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내 휘발유값은 갤런당 4달러를 넘어 5달러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 140달러에 근접하면서 최고치를 향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미국 내 휘발유값도 치솟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미 전역에서 유일하게 갤런당 5달러를 넘었고 뉴욕 등 9개주는 4달러 이상으로 급등한 상태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공격이 예상보다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주춤거리는 국면에서 러시아가 다시 총공세에 나섰다. 민간인을 포함해 수천명이 숨지는 참상이 빚어지면서 오일쇼크, 유류파동 위기가 임박한 상황이다.

국제유가는 우크라이나전쟁 상황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던 시점에는 소폭 하락했다가 러시아군의 총공격이 전개된 지난 4일에는 다시 급등세로 돌아서는 등 시시각각 요동치고 있다.

이날 영국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118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116달러까지 상승했다. 주말을 맞으면서 상승세가 더 거세지는 모습이었다. 6일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18% 폭등해 139.13달러에 거래됐으며, WTI는 130.50달러까지 뛰어올랐다. 이는 각각 2008년 7월 이후 최고가다.

지난 연말 배럴당 65달러에 머물던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2배 이상 급등하는 오일쇼크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인들은 하룻밤 새 유가가 갤런당 10센트씩 뛰어올라 웬만한 차량을 가득 채우는 데 70~80달러 내지 100달러나 드는 고유가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토로한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쟁과 서방세계의 러시아 제재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보여 기름값이 언제까지 얼마나 폭등할지 몰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무연휘발유의 경우 갤런당 3달러84센트로 하루 만에 10센트, 1주일 새 27센트 급등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주 평균 가격이 5달러7센트로 미 전역에서 처음으로 5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와이는 4달러66센트, 네바다 4달러29센트, 오리건 4달러28센트, 워싱턴 4달러22센트, 알래스카 4달러18센트, 일리노이 4달러10센트, 뉴욕 4달러5센트, 펜실베이니아 4달러 등 9개주가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 은행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 등 금융거래 차단에 이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막는 선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 역시 지구촌 경제를 뒤흔들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 여파도 우려 요소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네온 등 희소 자원 공급에 차질을 빚어 가뜩이나 극심한 반도체 공급망 위기가 한층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번지고 있다.

일본 도시바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영향으로 최소한 내년 3월까지 반도체 등 전자부품 공급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도시바의 사토 히로유키 디바이스 부문 대표는 6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물질의 주요 공급처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며 공급망 위기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네온과 크립톤, 아르곤, 제논 등 희소 원자재의 주요 공급 국가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네온 생산 비중은 전 세계 약 70%다.

러시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러시아는 이날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응해 세계시장에서 자국산 비중이 높은 전자제품 소재의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산업통상부는 이날 합성사파이어 수출 금지와 관련해 "우리는 비우호적인 시나리오 전개를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최후의 수단으로 대응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당장 합성사파이어 수출을 중단하지는 않겠지만 서방의 추가 제재가 계속될 경우 러시아에도 대응카드가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합성사파이어는 스마트폰 화면을 비롯한 전자제품 마이크로칩 발광다이오드(LED)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워싱턴=한면택 특파원 hanm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