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도 거침없는 질주

2022-04-29 10:53:32 게재

매출상위 세계 10위권 4개사 진입

TSMC, UMC 등 약진효과 덕분

미디어테크, 1분기 역대 최대 순익

대만이 반도체에서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만이 아닌 팹리스(설계)에서도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사실상 독점하던 팹리스 분야에서 대만 기업이 약진하면서 반도체 업종에서 대만이 당분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일 "대만이 반도체 설계분야에서 미국의 아성에 구멍을 내고 있다"면서 "세계 팹리스 업체 매출 상위 10곳 가운데 4개사가 대만 기업이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대만이 기존에 강점이었던 생산에 더해 설계에서도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대만에 대한 지나친 반도체 의존이 향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조사회사 트랜드포스는 3월 말 반도체 설계에 특화된 각국 기업의 매출 순위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4위에 대만의 미디어테크가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노바테크(6위)와 리얼테크(8위), 하이맥스(10위) 등 모두 4개사가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1980년대 이후 반도체 설계 분야를 사실상 독점적으로 주도해 온 미국 기업의 영향력이 일부 약화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2011년 팹리스 분야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미국은 퀄컴을 비롯해 모두 8개사가 포함됐었지만 대만 기업의 약진으로 그 비중이 줄었다. 다만 미국은 여전히 퀄컴과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이 상위권을 점하고, 전체 매출 비중도 늘어나는 등 절대적인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대만 업체들이 이처럼 약진하는 배경에는 TSMC 등 대만 파운드리 업체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TSMC와 3위인 UMC 등 대만 업체가 설계 관련 발주를 몰아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TSMC와 UMC는 지리적인 이점과 소통이 수월한 대만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 과정에서 팹리스 업체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스마트폰 전용 반도체의 경우 TSMC와 긴밀한 미디어테크가 경쟁사인 퀄컴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퀄컴의 경우 최근 1년 동안 반도체 부족 사태 속에 TSMC와 관계를 복원해 이 분야에서 만회를 노렸지만 미디어테크에 뒤지면서 점유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싱크탱크인 산업정보연구소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대만에는 모든 공정의 반도체 산업이 집약돼 있고 각 기업의 거리가 물리적으로 대단히 가깝다"면서 "설계에 특화된 팹리스 기업은 업무의 효율화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의 반도체 설계분야 약진은 인적 자원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업체인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자일링스의 최고경영자가 모두 대만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들 3개 업체의 주력 거래처도 TSMC여서 대만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업계 생태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처럼 반도체에서 대만으로 집중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대만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반도체와도 관련이 있다"면서 "만약 대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리스크가 커지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대만 집중을 멈출 수 있는 힘은 부족해 보인다"고 했다.

한편 대만 팹리스 업체 미디어테크는 지난 27일 올해 1분기 결산보고에서 순이익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30% 늘어난 332억대만달러(약 1조4300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같은 기간 32% 증가한 1427억대만달러(약 6조1400억원)를 기록해 분기 실적으로 역대 최고수준을 보였다. 이처럼 실적이 좋아진 데는 5G 스마트폰 전용 반도체 수요가 늘어난 것이 주된 배경으로 파악됐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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