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대한민국을 인양하라' | ③ 부패·참사의 고리 끊지 못해

'관피아'에서 '정피아'로 바뀌었을 뿐 … 유착은 그대로

2015-04-16 14:22:32 게재

공직자 재취업 제한에만 초점 … 전문성 결여 '정피아' 활개

공직사회 '복지부동' 확산 우려 … "행위규제가 근본해법"

"민관유착은 우리 사회 전반에 수십년간 쌓이고 지속돼 온 고질적 병폐다.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담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 해결을 공언했다.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민관유착을 없애 '제2의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관피아의 '낙하산' 인사에 제동이 걸리고, 그 자리를 '정피아(정치권+마피아)'가 대체했을 뿐이다.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허점이 많아 실효성을 의심받고,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민관유착 폐해 드러낸 세월호 = 세월호 참사는 민관유착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준 사고였다. 공무원들이 퇴직 후 산하기관이나 협회로 자리를 옮기는 게 자연스런 구조에서 선박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업무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해운사들은 힘있는 공무원들을 모셔와 온갖 불법과 편법행위의 '바람막이'로 삼으려했다. 세월호가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기 위해 불법으로 개조하고, 평형수조차 제대로 채우지 않은 채 항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관행화된 민관유착 구조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민관유착 근절을 위한 대대적인 공직사회 개혁에 나섰다. 박 대통령도 '관피아 척결'을 외치며 힘을 실어줬다.

실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퇴직공무원의 재취업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늘어났다. 공직자윤리법도 강화됐다. 취업제한 기간이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고 업무관련성 판단 기준이 소속부서에서 소속기관 업무 전체로 확대됐다. 또 취업제한 기관을 시장형 공기업, 사립대학, 종합병원 등 1만5000여곳으로 늘렸다.

◆관피아·정피아 낙하산은 그대로 = 하지만 현실은 정부가 내걸었던 관피아 척결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관피아 문제의 핵심인 낙하산 인사만 해도 그 규모가 줄긴 했으나 적지 않은 관료들이 산하기관과 단체에 낙하산을 펼쳤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영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300개 공공기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관의 장과 감사 397명 중 관료출신은 118명으로 세월호 사고 당시 161명보다 43명(26.7%)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관장은 세월호 사고 전 115명에서 91명으로, 감사는 46명에서 27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관료들의 낙하산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부터 올 3월말까지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141명 중 관피아로 분류된 인사는 18명이었다.


민간협회, 로펌으로의 낙하산도 여전했다. 지난달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박기풍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은 해외건설협회장으로 이동했고, 국민수 전 부법무부 차관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재취업했다. 공무원들의 낙하산 인사가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힘쎄고 잘나가는 공무원은 예외였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관료를 대신해 정치권의 낙하산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의원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당시 공공기관 장과 감사 397명 중 '정피아'는 48명이었으나 올 3월말에는 53명으로 10.4% 증가했다. 기관장만 24명에서 28명으로 늘었다.

자니윤(윤종승)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처럼 감사로 내려온 '정피아'도 24명에서 25명으로 늘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임명된 정치권 출신 기관장은 7명, 감사는 12명으로 관료 출신(18명) 보다 1명 많았다. 결국 관피아 자리를 정피아가 꿰찬 셈이다.

정피아는 해당 직위와 관련한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관피아보다도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은 관료들이 지닌 관리의 전문성마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특성상 정치권 등 외부압력에 더 취약하다"며 "관피아보다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직자윤리법, 개선 아닌 개악" = 지난달 말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공직자윤리법에 대해서도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우선 취업제한 기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린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취업제한 기관을 확대했다고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이 빠져있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공무원의 취업 제한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개악'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힘쎈 공무원들이 요리조리 피해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완전히 봉쇄하기도 어려운데다 관료보다도 더 전문성이 떨어지고 독립성도 약한 정피아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얘기다.

이창원 교수는 "아무리 취업제한을 강화해도 갈 사람들은 이것저것 피해 내려가게 돼 있다"면서 "개정 공직자윤리법은 단지 효과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정피아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퇴보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문화가 확산되는 것도 무시못할 부작용으로 꼽힌다. 중앙부처 한 국장급 공무원은 "빨리 승진해도 어디 나갈 곳도 없는데 어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느냐"며 "사고 안치고 주어진 일만하면서 오래 다니려고만 할텐데 결국 국가적 낭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취업제한보다는 행위규제를 통해 공무원들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건전한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정하고 투명하다면 공직자의 재취업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며 "대신 재직자의 공정한 업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매뉴얼화해 행위를 규제하고 위반시 강력히 처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위규제야말로 가장 강력한 관피아 척결방안인데도 정부는 취업제한 기관을 리스트화 하는 등 후진국형 대책만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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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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