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노려 사고위장 살인까지 … 연 4.7조원 샌다

2015-06-24 11:04:24 게재

살인·상해 등 흉악범죄 1년새 19.4% 증가

갈수록 조직화·대형화·지능화하는 보험범죄

사회적 피해에 비해 처벌은 아직 관대한 편

#2013년 3월 부산시의 한 선착장에 그랜저 승용차를 정차해 놓고 있던 신모(39·여)씨는 후진하던 박모(31·남)씨의 차량에 부딪히면서 바다로 추락했다. 이를 목격한 남편 박모(32)씨는 바다로 뛰어들어 아내를 구하려 했지만 신씨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단순 운전 부주의로 여겨졌던 이 사고는 해양경찰 수사 결과 11억원 상당의 사망보험금을 노린 남편 박(32)씨와 지인 박(31)씨의 차량사고 위장 살해극으로 드러났다.

남편 박씨는 2009년부터 아내 신씨로 하여금 특정보험에 연속적으로 집중 가입하도록 했다. 이어 그는 2012년 11월 초에 지인인 박(31)씨에게 차량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자고 제의한 후 2억원을 주기로 하고 이듬해 3월 초까지 수시로 만나 범행을 모의하고 사고 전날에는 현장답사까지 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사람의 목숨까지 노리는 '인면수심'의 보험사기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 지능화하고 있다. 인륜을 저버린 보험범죄로 우리 사회가 한해에 쏟아붓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3년 말 기준으로 연간 4조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2010년 3조4000억원로 추산됐던 보험사기 규모가 3년 만에 1조3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2010년 7만원으로 평가됐던 국민 1인당 손실금이 2013년에는 약 1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국정과제의 하나로 꼽고 보험사기 근절을 핵심 추진과제로 삼고 있지만 보험범죄가 갈수록 빠르게 번지면서 당국의 적발 노력을 앞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보험사기로 국민 1인당 10만원 손실 = 24일 금융감독원과 생·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보험사기액은 5997억원으로 전년 5190억원보다 15.6% 증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보험사기 혐의자도 전년보다 9.4% 증가한 8만4385명으로 집계됐다.

과거에는 보험사기가 개인의 단독범행 수준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직폭력배, 전문브로커 등에 의한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범죄가 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해·살인·상해 등 강력범죄의 증가다. 2013년 한해 동안 가족이나 지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상해치사 등 흉포한 범죄로 인한 보험사기 규모는 98억3500만원으로 1년 새 19.4%나 증가했다.

금감원이 펴낸 '보험범죄 형사판례집'에 따르면 보험사기범 A씨와 B(여)씨는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내연 관계인 두 사람은 B씨의 전 남편 I씨의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 이들은 I씨(피해자)가 운행하는 승용차의 체납세금을 내주고 차량번호판을 찾아줘 다시 운전할 수 있게 해줬다. 이들은 군산시의 한 마을 도로 인근 논바닥을 승용차가 추락해 들이받는 사고를 낼 장소로 정하고, B씨가 피해자를 유인해 술을 먹인 뒤 A씨가 미리 준비한 절구공이 등으로 피해자를 때려 제압해 미리 주차해 둔 피해자의 차량이 있는 곳까지 다른 승용차로 데려갔으나, 피해자가 깨어나 차문을 열고 나가자 다시 복스렌치로 뒷머리를 때려 현장에서 숨지게 했다.

이들은 사망보험금 8800만원을 타내려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의 경영난과 사치스런 생활로 빚에 몰린 중소기업 사장이 보험금을 노리고 여직원을 살해했다 발각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다.

숯을 이용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대표인 김모씨는 불어난 빚을 해결하려고 입사 4개월 밖에 안된 여직원(32)을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에 가입한 뒤 살해해 26억9000여만원에 이르는 보험금을 타내려했다. 김씨는 사업 채무 뿐 아니라 월 300만원의 리스료와 할부금을 내면서 외제차 2대를 몰았고, 제트스키 1대 할부금으로 매달 350만원을 부담하면서도 월 61만여원의 보험료를 거르지 않고 납부했다.

별도 법률로 처벌 강화해야 = 이처럼 보험사기가 중대범죄까지 부르며 활개를 치는 추세와 달리 처벌은 관대한 편이다. 앞의 사례들처럼 보험사기범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사례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보험사기범의 징역형 선고 비율(2012년 기준)은 22.6%로 일반 사기범(45.2%)의 절반에 불과하고, 벌금형은 51.1%로 일반 사기범(27.1%)보다 두 배가량 높다. 또 보험사기범에 대한 징역형 선고비율은 2002년 25.1%→2007년 24.7%→2012년 22.6%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보험사기를 별도의 범죄로 구분해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일반 사기죄와 구분없이 보험사기가 형법상이 사기죄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만 범죄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김성 손해보험협회 공익사업부장은 "최근 보험범죄는 갈수록 조직화 대규모화하고 심지어 생명을 노린 살인사건처럼 흉포화 양상을 띠면서 사회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보험사기특별법등 별도의 법률을 마련하면 보험사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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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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