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목숨 위협받거나 살해당한 아내 최소 93명

2016-07-26 10:37:35 게재

폭행의 강도 점점 더 세져

가정보호사건 송치 후 폭력·살인도 증가

# 이달 14일 송모(61)씨와 아내 A(58)씨는 관악구 자택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초부터 이들 부부의 가정폭력을 수사해 오던 경찰 관계자들은 송씨의 이전 행동으로 보아 송씨가 약물로 A씨를 살해하고서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했다. 송씨의 폭행이 심하다고 판단한 경찰이 11일 세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1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는 오랜 기간 A씨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해왔다. 올 3월에는 송씨의 폭력으로 A씨가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송씨의 폭행으로 A씨의 두개골은 골절됐고 수일간 혼수상태에 있었을 정도로 폭력의 정도는 매우 심각했다. 당시 경찰의 신청을 통해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에도 폭력은 계속됐고 5월에 경찰과 검찰은 송씨에 대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내가 맞을 만해서 맞았고 남편은 죄가 없다"고 말하자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추가 피해 우려가 있는 A씨를 설득, 쉼터로 보내 남편과 격리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A씨는 쉼터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며 남편에게 돌아갔다. 그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A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 지난 6월 4일, 제주도에서 오모(45·여)씨가 함께 사는 남성 유모(49)의 폭행 끝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씨는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숨졌고 사건 당일 폭행은 수 시간 동안 계속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결과 유씨는 올해 1월에도 폭행으로 체포된 바 있으나 가정보호 사건으로 처리됐고, 2월부터 월 1회씩 '상담'을 받는 것으로 처리됐다. 이들은 가정폭력 특별 관리대상으로 지정돼 4개월간 5차례 방문 면담과 20여 차례 전화 상담을 진행해왔다. 사건 전날인 3일에도 유씨는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날 유씨는 자꾸 과거 얘기를 꺼낸다는 이유로 오씨를 살해했다.

# 2013년 어린이날 하루 전인 5월 4일. 당시 이혼소송 중이던 김모(36·여)씨는 남편(61)에게 목 졸려 살해당했다. 김씨는 결혼생활 14년 동안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하고 수없이 목을 졸렸으며, 칼을 든 남편에게 협박당하기도 하다 살아남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쉼터로 피신한 김씨는 이혼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법원은 재판을 멈추고 10회에 걸친 부부 상담 명령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김씨는 "어린이날 하루만 아이들과 함께 집에 돌아와 지내면 이혼해주겠다"는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날 새벽 김씨는 남편에게 목을 졸려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이혼재판 진술서에 "저는 사랑스런 쌍둥이 딸을 위해… 무엇보다도 살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했지만 결국 목숨을 잃어야했다.

해마다 가정폭력이 늘어나며 폭력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있다. 한국 여성의 전화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7년간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여성만 최소 657명에 달한다. 지난해 한 해 가해자 남편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거나 살해당한 아내는 최소 93명에 달한다. 위 사례와 같이 가정보호사건 송치 후 상담 진행하던 중 폭력·살인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가정폭력 사범은 6.5배 증가했지만 기소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불기소와 가정보호사건 송치는 늘어나고 있다. 여성의 전화는 "불기소되거나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는 경우가 전체 85%임을 볼 때, 이는 신고해도 가정폭력 가해자가 전혀 처벌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돼도 불처분 및 상담위탁 위주로 처분되고, 접근행위금지, 전기통신이용 접근행위금지, 친권행사제한은 극히 미미한 상황이다.

법원행정처의 '2015 사법연감'에 나온 2014년 가정보호사건 현황을 보면 불처분(30%), 보호처분 중 상담위탁(19.2%), 사회봉사명령(9.3%)은 전체 58.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접근행위금지(55건)·전기통신이용 접근행위금지(3건)·친권행사제한(2건)등은 총 0.6%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후에도 여전히 가해자의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여성의 전화는 "현행 가정보호사건 송치는 가해자상담에 대한 효과성도 정밀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며 가정폭력 재범률만 높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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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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