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아동성착취범 검거에 아동 위장수사 활성화해야 ②

"범인 검거위한 계략은 함정수사 아냐"

2020-04-09 12:29:37 게재

대법원, 마약사범 판례로 지적

기회제공형 함정수사 예외적 허용

n번방사건을 계기로 아동성착취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서는 아동으로 위장한 함정수사를 활성화해야 한다. 피해가 발생한 후에 개입하면 늦다. 위장수사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적극 개입해 범죄를 차단할 수 있다. 채팅 상대방이 아이가 아니라 경찰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성년자에게 함부로 만남을 제안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위장수사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편집자 주>

함정수사를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법률 규정은 없지만, 형사소송법의 적법절차 원칙과 상충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사법부 판례는 대체로 함정수사를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으로 나눠, 전자는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위법하다고 판단한다. 범죄의사가 있는 자에게 범죄기회를 제공하는 기회제공형은 수사의 상당성을 충족해 적법한 경우가 있고, 범죄 의사가 없는 자에게 사술이나 계략을 써서 범죄를 유발하는 범의유발형은 수사의 신의칙에 반해 위법하다는 것이다.

구체적 사안마다 경우를 따져서 판단한다. 마약수사나 성매매수사 등에서 함정수사가 활용되고 있다.


◆취객 주변 잠복, 부축빼기범 검거 '합법' = A씨는 공원 인도에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주변을 살피다가 으슥한 곳으로 10m 정도 끌고 가, 바지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 직후 잠복 중이던 경찰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기소했다. A씨는 함정수사라며 위법한 공소제기라고 주장했다. 2007년 5월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해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위법한 함정수사라 할 수 없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마약수사관은 B씨가 마약을 판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협조자를 B씨에 접근시켰다.

하지만 B씨는 마약을 팔지 않았다. 협조자가 수차례 요청하자 B씨는 감옥서 만난 마약판매 전과자 C씨를 연결시켜줬다. C씨가 협조자에게 마약을 팔려다 체포됐고, B씨와 C씨 모두 기소됐다.

2006년 4월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윤기)는 "함정수사는 이른바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으로 구분되고, 범의를 가진 자에게 단순히 범행기회를 주는 것은 수사방법상 그 상당성이 인정돼 적법한 반면, 후자는 국가에게 요구되는 수사의 적법절차 법리에 반해 위법하다"며 B씨는 '범의유발형'이라 공소기각, C씨는 '기회제공형'이라 유죄로 판단했다.

◆대상자와 수사방식을 종합해 판단 = "본래 범의(犯意)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을 써서 범의를 유발케 해 범인을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함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함정수사에 기한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 하지만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해 단순히 범행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할 경우에는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단정할 수 없다." 2005년 10월 28일 대법원 제3부(주심 이규홍 대법관)가 함정수사에 대해 판시한 내용이다. 이른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허용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이다.

함정수사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수사 대상자가 범의를 이미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와 수사행위가 범의를 유발시켰는지 여부이다. 사법부는 이를 판단함에 있어 대상자의 주관적 사정(함정수사 활동이 없었더라면 무고한 사람인지 여부)과 수사방식의 객관적 사정(범의를 유발할 정도로 강하거나 사술적인 것인지 여부)을 종합해 판단한다.

◆"마약 구해와도 안전" 약속 = 피고인 D씨와 E씨는 중국 심양시에서 필로폰 약 87g을 구입해 한국으로 밀수입하고, 투약한 혐의로 기소돼 2003년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피고인들은 필로폰 구입과 반입이 모두 수사기관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함정수사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2004년 5월 14일 대법원 제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의 함정수사에 의해 필로폰을 구입해 밀수입한 범의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척한 원심판결은 위법하다"며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이 함정수사로 판단한 근거는 △마약수사관이 자신의 정보원이 구속되자 그를 위한 공적을 만들어 빼내기 위해 필로폰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사실 △필로폰을 구해오면 검찰에서 피고인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말했던 점 △필로폰 구입자금까지 교부해 집요하게 부탁한 점 등이 그것이다.

파기환송심인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재판장 노영보)는 2005년 1월 "함정수사를 위한 수사기관의 '작업'에 의해 비로소 이 사건 범행을 할 범의를 일으켰다고 하는 피고인들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며 필로폰 구입과 밀수 부분을 무죄로, 투약만 유죄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2005년 10월 28일 대법원 제3부(주심 이규홍 대법관)에 의해 확정됐다.

◆경찰이 손님 가장해 도우미 요구 = 피고인 F씨는 모씨에게 필로폰 구매부탁과 돈을 받고 부산에서 필로폰 8g을 구입해 전달한 혐의와 소지, 투약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함정수사'라며 상고했다. 2007년 7월 대법원 제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해 범행의 기회를 주거나 단순히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죄인을 검거하는 데 불과한 경우에는 이를 함정수사라 할 수 없다"며 "이미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을 검거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정보원을 이용해 피고인을 검거장소로 유인한 것은 함정수사로 볼 수 없다"고 상고기각 판결을 했다.

함정수사를 인정해 공소제기가 무효라고 판단한 경우도 있다. 경찰관들이 노래방 도우미 알선영업 단속실적을 올리기 위해 한 노래방에 손님을 가장한 채 들어가 도우미를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노래방 주인인 피고인은 '자신들은 손님에게 도우미를 불러준 적이 없고, 다른 손님들도 불러달라고 했으나 거절해 손님을 모두 돌려보낸 바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다시 노래방을 찾아 도우미를 불러줄 것을 요구했고, 도우미가 오자 주인을 단속해 기소했다. 노래방 주인은 함정수사라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모두 이를 받아들여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2008년 10월 대법원 제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이 사건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규정에 위반해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며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함정 수사로 판단한 근거는 △경찰관들이 제보나 첩보를 가지고 이 노래방을 단속한 것이 아닌 점 △경찰관들이 한차례 거절당하고도 다시 찾아가 도우미를 요구한 점 등이다.

◆청소년보호 아닌, 피해우려도 = 성매매 근절을 위해 진행하는 함정수사의 경우, 경찰이 성매수자로 가장해 성매매를 알선하는 유흥업소를 단속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권기백 판사는 지난해 4월 손님을 가장한 경찰관에 의해 성매매알선 단속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진 유흥주점업주 G씨사건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G씨가 성매매를 알선하게 된 동기와 경위 등에 비춰보면 수사기관이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하게 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우리나라 성매매 함정수사는 그 적법성 여부와 별개로, 가해자 처벌이 아닌 피해자 처벌이라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외국 함정수사는 아동으로 가장해 성매수자를 직접 검거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로 성매매 업소여성이 성착취 피해자가 아닌 구속 상대가 되기도 한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함정수사 또한 마찬가지여서, 아동·청소년들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처벌이 필요한 가해자로 피의자 조사를 받거나 대상청소년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진행한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매매에 이용된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 103명 중 7명이 성매수자로 위장한 경찰의 함정수사로 조사를 받았다. 아동·청소년을 성착취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행한 함정수사가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획] 아동성착취범 검거에 아동 위장수사 활성화해야" 연재기사]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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