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죄는 말단 1명뿐

2023-11-02 11:13:26 게재

대법, 상고 기각 … "업무상 과실 증명 어렵다"

해경 9명 무죄 확정 … 허위문건 작성만 유죄

2014년 4월 16일 303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가운데 참사의 책임을 진 공무원은 단 1명에 불과했다. 구조실패의 책임을 물어 기소된 해경은 모두 12명이었지만,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현장지휘관 김경일 정장(2014년 기소)만 징역 3년이 확정됐다. 2020년 '뒤늦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 9명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다만 2명은 참사 관련 허위 문건 작성 혐의가 인정돼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경청장과 김수현 전 서해해양경찰청장,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 여인태 전 해경 해양경비과장 등 9명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전 청장 등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승객들의 퇴선유도 지휘 등 구조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태만해 승객 303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142명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세월호 여객선이 기울어져 침몰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해양수색구조 매뉴얼과 관련 법령에 따라 승객 구조계획을 세워 피해자들의 생명을 지켜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했다고 봤다.

반면 김 전 청장 등은 사고에 유감을 표하고 사과하면서도 법리적으로 죄가 될 수 없다며 무죄를 다퉜다.

앞서 참사 당시 박근혜정부가 구조실패 책임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김경일 123정장만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김석균 청장 등 해경 지휘부는 2019년 문재인정부 당시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출범한 뒤에야 비로소 재판에 넘겨졌다.

해경 지휘부 9명의 재판에서 쟁점은 승객 퇴선을 위한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이 업무상 과실에 해당하는지였다. 1·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 등이 승객들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조치가 가능했는데도 하지 못한 점이 입증돼야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하는데 법원은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봤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해경에 거짓으로 교신하면서 퇴선 명령 없이 탈출했고,이에 따라 다수 승객이 탈출하지 못하고 선내에 대기 중인 상황을 해경으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웠으리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들이 구조 인력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구조 임무를 다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이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고 당시 세월호는 무리한 양의 화물을 싣고 부실하게 고정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중심을 잃고 침몰했는데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웠던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다만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과 이재두 전 3009함 함장은 사건 보고 과정에서 '사고 초기에 퇴선 명령을 지시했다'는 취지의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도록 한 혐의가 1·2심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업무상 과실 혐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세월호 구조 실패와 관련 형사책임을 진 사람은 현장지휘관이었던 김경일 전 123정장 한명에 그쳤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간을 조작한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두 번의 대법원 판단을 거친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동원)는 당시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파기환송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환송으로 판결한 대법원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다"면서 "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허위공문서작성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관련 허위 공문서를 국회에 제출한 혐의로 2018년 3월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실장은 해당 문서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유선으로 처음 보고받은 시간, 실시간 보고 여부 등을 사실과 다르게 적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1·2심 모두 김 전 실장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국회에 제출한 문서 내용과 참사 당시 관저·부속비서관실에 보고된 내용·기록이 일치한다"며 허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어 김 전 실장이 답변서에 '대통령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적은 내용은 '주관적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허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11월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관련기사]
'세월호참사' 해경 지휘부 무죄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김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