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위험 예방조치 직접 주의의무 없어"

2023-12-07 11:24:26 게재

대법, 고 김용균씨 사망 책임 원청 대표에 무죄 확정

중대재해법 제정 계기됐지만 소급적용 안돼

국회, '50인 미만' 적용 2년 추가유예 추진 … 노동계 반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다 숨진 하청업체 직원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안전 조치 소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 회사 대표에 대해 법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계기가 된 사건이지만 이 법의 소급 적용이 안돼 원청회사 대표가 면죄부를 받게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작업장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어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한국발전기술 법인과 임직원들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였던 김용균씨는 지난 2018년 12월11일 오전 3시 23분쯤 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김병숙 전 대표 등 서부발전 임직원 9명,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전 대표 등 임직원 5명, 원·하청 법인을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호법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기소했다.

1심은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로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고의로 방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김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백 전 대표에 대해서는 "안전을 위한 인력보강에 용역계약상 제약이 있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며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한국서부발전·한국발전기술 관계자 12명에게는 벌금 700만원 또는 금고 6개월~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한국서부발전 법인에는 벌금 1000만원, 한국발전기술 법인에는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전체적으로 형량이 다소 줄어들거나 유죄 판단이 무죄로 뒤집혔다.

김 전 대표에 대해서는 "개별 설비에 대해서까지 사고예방 의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고, 각종 안전사고 보고를 받았더라도 구체적이지 않아 사고 위험성을 인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백 전 대표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받았다. 한국서부발전 소속 일부 관계자에게는 무죄가 선고됐고 한국서부발전 법인에 대한 판단도 무죄로 뒤집혔다. 한국발전기술에는 1심보다 액수가 줄어든 1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험이 예상 가능한데도 개방된 점검구에 덮개를 설치하지 않고 방치한 점, 2인1조로 적절한 근로자 배치를 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서도 "설비의 이상 유무는 작동 시에만 확인할 수 있어 점검 시 컨베이어벨트의 작동을 중지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근로자인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와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누구 한 명의 결정적 과오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므로 개개인 과실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사고는 하청 노동자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일명 '김용균법')으로 이어져 2020년 1월부터 시행됐다.

이후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요구가 잇따랐다. 정의당과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2020년 12월부터 29일간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업계와 경제단체 등의 반대를 뚫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2년 1월 27일 시행됐다. 두 법 모두 이 사건에는 소급되지 않아 이 재판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한편 내년 1월 27일 시행되는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방안이 연내 통과될 것으로 보여 노동계 반발이 예상된다. 당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안을 반대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중소기업 협상력 강화 방안 등을 병행할 시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으로 선회,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지난 5일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만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위한 정부안을 전달했다.

민주당은 유예안 논의 조건으로 4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정부측 사과 △최소 2년 간 매 분기별 준비 계획 및 예산 지원 방안 △2년 유예 후 시행하겠다는 정부와 관련 경제단체 입장 표명 △중소기업 협동조합법 개정안 병행 처리 등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은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결의대회를 진행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5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는 단순히 시기를 늦추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3년이나 유예한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이 연기되면 법 시행을 앞두고 준비를 했던 기업들만 바보 만드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업장에서 사고로 죽어나가는 노동자는 민생이 아니란 말이냐"며 "더욱더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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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한남진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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