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기업 손배 책임져야"

2024-01-25 11:21:12 게재

대법 "청구권 소멸되지 않았다" 잇따라 판단

일본 기업 국내 재산 강제처분해야 효과 발생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이다. 다만 일본 기업 반발로 실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일본 기업의 국내 재산을 강제처분할 수 있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5일 오전 10시 고 김옥순 할머니 등 여자정신근로대와 유족 5명이 일제강점기 때 군수업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일본 도야마 지방재판소에 손해금과 위자료 지급,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처음 낸 시점이 2003년 4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1년 만에 대법원의 결론이 나온 셈이다.

1929년부터 1932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군산, 목포, 광주, 서울, 대구 등에서 거주하던 김 할머니 등은 만 12~15세 때인 1944~1945년 후지코시의 도야마 공장에 강제 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당시 공장에서 하루 10~12시간가량 비행기 부품이나 폭탄을 만드는 일을 담당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의 기망, 회유, 협박에 의해 근로정신대에 지원하거나 강제 연행되어 강제노동을 했다면서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일본 사법부도 후지코시가 피해자들을 모집할 때 기망, 협박 등의 위법적인 권유가 있었다는 점과 열악한 환경에서 중노동을 강요했다는 점,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인정했다.

그러나 2007년 9월 도야마 지방재판소는 그 권리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효력을 잃었다면서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도 △후지코시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청구권 협정 체결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원고들이 객관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된 시점이 언제인지 등이다. 1·2심은 김 할머니 등 5명에게 모두 5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후지코시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이번 소송 건에만 합계 5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견해를 최종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며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로 비로소 대한민국 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 가능성이 확실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날 하급심 판결에서 논란이 됐던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2012년으로 봐야 할지, 2018년으로 봐야 할지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대법원 판례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는 경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정한다.

적어도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는 일본 기업들이 소멸시효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을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1일 이후의 다른 피해자들이 제기한 비슷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한다고 봤다. 또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소멸했다는 일본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최종 승소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까지는 피해자들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다면서 청구권이 시간이 지나 없어졌다는 항변 역시 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다만 일본 기업들이 배상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일본과 관계 개선을 꾀하면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내놨다. 하지만,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일부 피해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어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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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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