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찌꺼기 재활용, 불합리한 규제에 속도 안 난다

2024-02-05 13:00:01 게재

폐기물 아닌 순환자원 인정에도 현장 체감도 떨어져 … 환경부, 새로운 사업 모델 강조했지만 정확한 통계도 없어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신재(재활용하지 않은 처음 새 원료)나 재활용원료나 똑같은 원료에요. 커피찌꺼기를 원료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데, 추가 인정을 받아야 하니 시간이나 돈이 많이 들 수밖에요. 순환자원 지정제도 품목에 전기자동차 폐배터리도 있는데, 커피찌꺼기는 왜 국립환경과학원이나 환경청 등에 인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환경부가 규제완화를 했다고 홍보를 했지만 현장 체감도는 떨어질 수밖에요.”

2일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 대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커피찌꺼기 사업을 확대할 계획 중이다. 환경·사회·투명경영이 중요해지고 커피 사용량도 늘어나 승산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 받으려면 결국 재활용업이나 폐기물처리업을 추가로 해야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이를 위해선 입지 등 해결 과제들이 많아요. 커피찌꺼기 재활용 산업이 확 붐을 일으켜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현 제도로는 속도가 나기 힘들죠.”

1월 9일 경기도의 한 환경전문업체 대표 B씨의 말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2년 커피(생두+원두) 수입액은 13억달러(20만톤)로 전년대비 42.4% 증가했다. 20만톤은 어른 1명이 하루 약 1.3잔을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에 음료 수입은 주춤했지만 커피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커피찌꺼기, 썩어서 문제라고? = 원두에서 커피를 추출한 뒤 나온 커피찌꺼기는 △퇴비 △덱(deck·산책로 등에 까는 인공구조물) 등 건축자재 △플라스틱 제품 등 다양한 용도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재활용 시장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불필요한 규제로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2022년 3월 ‘커피찌꺼기, 허가 없이도 재활용 가능해진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적극행정제도로 2022년 3월 15일부터 커피전문점에서 생활폐기물로 배출되는 커피찌꺼기를 순환자원으로 인정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재활용 허가 또는 신고 없이도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탄소 감축에도 도움이 된다며 홍보를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커피찌꺼기 1톤 소각 시 탄소 배출량은 338kg이나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다르다는 볼멘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2022년 12월 자원순환기본법을 전면 개정해 올해부터 시행한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에서는 △순환자원 지정제와 △순환자원 인정제를 운영 중이다. 순환자원 지정제도는 순환자원 인정제도보다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불필요한 폐기물 규제를 현실화한다는 장점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지정제에 해당하는 품목은 업체들이 별도의 허가 등을 받지 않고 신재와 비슷한 조건으로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순환자원 지정제 품목은 △고철 △폐금속캔류 △전기자동차 폐배터리 △폐지 등이다.

2일 환경부 관계자는 “커피찌꺼기를 잘못 방치하면 썩을 수 있다”며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인증제를 하는 게 적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커피찌꺼기 보다는 전기자동차 폐배터리를 잘못 처리하면 더 유해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A씨는 “커피찌꺼기로 일회용 플라스틱 대체재를 만드는 기술은 이미 개발됐다”며 “이를 시장에 판매하려면 어차피 마지막 제품 단계에서 관련 승인 기관 등을 통과해야 하는데, 굳이 이중 삼중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커피찌꺼기는 소각을 하지 않고 덱으로 재탄생 할 수 있다. 사진은 덱으로 재활용하는 공정.

●환경부 “안정적인 수거체계 구축 필요” = 환경부는 1월 26일 ‘2024년 환경부 주요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재활용 제품 원료 등으로 커피찌꺼기를 활용하는 사업모델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연간 매립비용 340억원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커피찌꺼기 재활용 시장에 대한 정확한 국가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폐기물 전자정보처리 프로그램(올바로 시스템)에 등록된 사업장폐기물 인계서 위탁량 기준으로 추정하는 상황이다.

커피전문점 등에서 생활폐기물로 나오는 분량은 올바로 시스템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치는 나오지 않는다고 환경부는 설명했다.

2일 환경부 관계자는 “커피찌꺼기를 활용한 스타트업들이 생겨나는 등 새로운 환경 산업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시범사업 등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시 부산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커피찌꺼기를 활용한 산업 확산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합성목재나 방부목재로 만든 덱 대신 커피찌꺼기를 원료로 한 제품을 통학로 둘레길 공원 산책로에 적용했다. 커피찌꺼기로 만든 벤치나 울타리 등을 도입했다. 게다가 만약 손상이 돼 덱 등을 교체해야 한다면 해당 제품을 부숴서 다시 새 제품을 만들 때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경제성과 환경성 여러 가지로 이득이 있는 셈이다.

커피덱은 손상이 돼도 다시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속도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다 해도 제때 환경이 조성이 되지 않는다면 성공 확률은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2일 또 다른 환경부 관계자는 “제조시설 등 사업장에서 대량으로 배출되는 커피찌꺼기의 경우 순환자원 지정 고시가 무리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커피전문점 등에서 생활폐기물로 배출되는 커피찌꺼기의 경우 분리·배출 및 수거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시중에 관리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다닐 우려가 있어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