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원어민 세대' 수능 국어 공부법

2024-03-13 13:00: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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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고 영상 몰입하는 청소년 … 정확히 읽는 훈련 통해 수능 '불국어' 대비해야

‘디지털 원어민’이라고 하는 요즘 중·고생은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너무 많다는 것이 큰 이유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60%가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 유튜브 시청시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렇게 미디어 친화적인 생활을 하다가 수험기로 접어들며 만나는 수능 국어 기출문제는 지문부터 상당히 부담스럽다. ‘책을 읽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도 밀려온다.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었다면 책을 안 읽었다면 수능 국어 공부는 어려운 걸까? 전문가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능 국어의 독서 영역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독서의 효용은 무엇인지 물었다.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부족은 어휘력 부족에서 시작된다.

“엄마, 그건 정말 명곡을 찌르는 말이었어.”

“그럴 땐 정곡을 찌른다고 하지.”

“정말 원수는 통나무다리에서 만난다니까.”

“아니, 외나무다리.”

이런 실수는 디지털 세대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학생들은 글도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글자를 꼼꼼하게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심한 사과’도 화제가 됐었다. 유명 웹툰 작가의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던 카페에서 예약 오류를 사과하며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공지를 읽은 이용자들이 “사과 맛이 왜 심심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때 심심하다고 하다니”라고 항의 댓글을 달면서 화제가 됐다. ‘심심(甚深)하다’는 표현을 ‘지루하다’로 이해하면서 시작된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높이 평가하며 한 영화평론가가 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평도 크게 회자됐다. 한자어로 압축된 한줄 평을 읽은 누리꾼들이 ‘명징’과 ‘직조’라는 어려운 단어를 꼭 써야 했느냐며 항의하는 댓글을 남겼고, 이 한줄평 또한 문해력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책 안 읽고, 영상 몰입하는 청소년 = 이 같은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는 현저하게 줄어든 독서량이 손꼽힌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청소년들이 책 대신 디지털 기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일 책을 읽는 비율은 초등학생 32.0%, 중학생 22.4%, 고등학생 14.7%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하락했다. 고등학생들은 독서활동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교과 공부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28.2%)’를 꼽았다.

또 중·고생 239명을 대상으로 독자와 비독자에 관한 실태조사를 발표한 ‘미디어 시대의 책맹(비독서) 현상과 독서교육의 방향’ 자료에 따르면 학년이 올라가면서 비독자가 많아지고 특히 고교생의 경우 ‘책을 전혀 읽지 않으며 SNS 웹툰 유튜브를 주로 한다’는 비율이 61%로 높게 나타났다.

책 읽기를 외면하는 청소년이지만 웹툰과 웹소설 이용 비중은 크게 늘었다. 2020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1년간 웹소설 이용 빈도를 조사한 결과 10대 이용자 311명 중 57.6%가 거의 매일 웹소설을 읽는다고 응답했다. 2013년 100억~200억원으로 추산된 웹소설 시장은 2020년 기준 6000억원 규모로 8년간 60배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웹소설을 많이 읽어도 읽기 역량을 높일 수 있을까? 해당 장르의 작법을 들여다봐야 한다. 대체로 짧은 문장과 대화체로 이뤄진다. 내용 역시 얕다. ‘구르미 그린 달빛’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드라마로 제작된 묵직한 작품들도 있으나 대체로 공식화된 인물 구조와 개연성 없는 스토리라는 평이다. 즉 웹소설 읽기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될 순 있으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마주하게 될 복잡하고 긴 수능 국어 지문 읽기와는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수환 강원 강릉명륜고 교사는 “웹소설은 아무래도 흥미 위주의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읽기’라는 원론적 관점으로 보면 다소 부정적”이라며 “다만 글 자체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수능 국어 점수, 독서 양에 비례? = 독서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추론하며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다.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은 텍스트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다면 독서량이 많을수록 수능 국어 공부에 유리할까?

김용진 경기 동대부영석고 교사는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은 일상적인 어휘력이 좋기 때문에 아무래도 독서 지문에 부담을 적게 느낄 수 있다”며 “또한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은 배경지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문제해결 과정에서 일정 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데도 국어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독서도 즐기고 다독상을 받았지만 모의고사나 수능 성적은 4등급인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이승우 경북 포항제철고 교사는 “독서를 좋아하는 것이 글을 빨리 정확하게 읽는다는 의미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지만 국어 시험 성적은 돋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한다. 독서 양이 많을수록 지문에 친숙할 순 있지만 수능 국어 점수가 독서 양과 반드시 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달리 말하면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수능 국어가 요구하는 바는 성실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튜브 SNS 게임 웹소설에 푹 빠진 중·고생들은 독서 양도 줄어 문해력이 떨어졌는데, 수능 국어의 비문학 독서 영역에서 다루는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다른 과목보다 시험 범위가 넓고 공부할 양이 많다.

김 교사는 “무엇보다 국어는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기출문제를 반복해 많이 연습한다면 수능 비문학 풀이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100개의 지문을 읽고 제목을 뽑고 문단의 핵심어를 찾고 두 대상의 관계어를 찾는 과정 자체로 훈련이 된다”고 설명한다.

진 교사는 “어떤 소재의 글이든지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며 “학생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면 못 푸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을 느낄 때 힘들어진다. 연습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연습을 하려면 무엇보다 공부할 시간부터 확보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의 60%이상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붙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멀리할 수밖에 없다. ‘자꾸 생각나면 중독인가요’를 쓴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사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자꾸 찾는 것은 일종의 중독 증상”이라며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고 운동을 통해 뇌에 ‘좋은’ 도파민 길을 만들면 좋다”고 조언했다. 간단한 스트레칭에서부터 줄넘기 조깅 에어로빅 댄스 스포츠 등 음악과 함께 자신의 호흡과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종목을 추천한다. 짧게라도 꾸준히, 그리고 혼자보다 친구와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수능은 훈련이 필요한 시험 =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생활한 디지털 원어민 세대는 읽는 것과 친해질 경험이 적었다.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다양한 형식의 글에 노출되는 경험을 통해 키워진다. 텍스트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상에 대한 배경지식을 넓혀야 한다”며 “세상 지식과 교과 지식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만큼 평소에 다양한 방면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어 점수는 쉽게 오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교사는 “수학이나 탐구는 지식을 습득하고 응용하는 과목으로 범위도 제한적이지만 국어는 범위가 없고 한두 번의 연습으로 실력이 좋아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해도 계속 낯선 독서 지문과 문학작품을 접하면 공부한 보람은 사라지고 지치기 쉽다. 이 교사는 “성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좌절하기 쉽지만 점수가 오르지 않아도 실력이 쌓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꾸준히 공부하는 끈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학생들이 특히 부담을 갖는 지문은 비문학 독서다. 수능 국어 시험에서도 오답률 상위 5문제는 대부분 독서 영역이다. 지난 2024 수능에서 문학이 어려웠다고 하지만 ‘오답률 TOP5’를 살펴보면 여전히 독서가 3문제를 차지했고 나머지 문법과 문학이 각각 한 문제씩이었다.

이 교사는 “다양한 글을 보다 적극적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며 “개념간의 관계, 개념을 통한 문장·문단 이해, 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지문을 읽는 연습을 한다면 국어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 교사는 “비문학은 글의 구조를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구조를 파악하면 내용 예측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특히 고3의 6·9월 모의고사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서 주관해 수능 출제 경향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사교육 등으로 양질의 지문과 문제를 일찍 접하기에 정작 고3 시기엔 연습할 지문이 부족할 수 있어 평가원 기출문제는 아꼈다가 실력을 키우고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사는 “고2부터는 수능 기출문제 연습이 필요하다”며 “좋은 지문과 문제를 접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은 수험생활이 끝나면 텍스트를 더 멀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능 이후야말로 독서의 세계에 빠져들기 좋은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조 교수는 “이 세상의 모든 깊이 있는 지식·사고·사유는 텍스트로 전달된다”며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더 복잡한 직무를 맡게 될수록,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수록 텍스트 이해력을 필요로 한다”고 당부했다.

김기수 기자·김민정 내일교육 리포터 mj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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