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스런 빈집이 소멸위기 마을 살린다

2024-04-08 13:00:22 게재

충주 관아골, 제주 북촌포구집 성과

지역소멸대응기금 활용사례도 늘어

충북 충주시 관아골. 오랜 기간 충주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마을이었고, 몇 해 전까지 법원 검찰청 은행 등이 모여 있던 이른바 ‘시내’였다. 하지만 주요 관공서가 떠나고 상권이 쇠퇴하면서 활기를 잃었다. 골목 절반 이상이 빈집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관공서가 이전하고 상권이 쇠퇴하면서 흉물로 남아있던 충북 충주 관아골 골목에 청년들이 모여들면서 활력을 되찾았다. 빈집을 활용해 성과를 낸 대표 사례다. 사진 행정안전부 제공

하지만 2017년 청년들이 이 골목에 모여들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충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청년가게 조성사업이 계기가 됐다. 청년들은 충주시가 지원하는 리모델링비 1000만원에 대출금을 더해 빈집을 사들여 고쳐 쓰기 시작했다. 방치됐던 빈집들은 이들의 손에서 뚝딱 카페가 되고 공방이 됐다. 또 다른 빈집은 숙박시설이 되기도 했다. 70~80m 남짓한 관아골 골목의 변화는 인근 여인숙골목으로 번졌고 하루 수천명이 모일 정도로 상권 회복에 성공했다.

제주 북촌포구집도 빈집을 활용해 만든 숙박시설이다. 중개플랫폼 ㈜다자요가 10년 이상 임대해 숙소로 활용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집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미 기업들의 워케이션 장소로 유명해지면서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다. 다자요는 제주에서만 9채의 빈집을 재생해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400여곳에서 빈집 소유자들의 임대 의사가 접수됐을 정도다.

이 밖에도 경북 경주시 황촌마을에는 빈집을 활용한 마을호텔 4곳이 생기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웃에 4~5개의 마을호텔이 더 생기면 경주 관광의 명소가 될 수 있다. 전남 해남군은 빈집을 귀촌자에게 제공, 폐교 위기의 작은 학교를 지켜내는 사업을 하고 있다. 전남 강진군은 농촌민박과 농촌체험을 연계한 생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5년부터 운영했는데 지금까지 5만명 가까이 방문했고 농가들이 얻은 수입도 40억원을 넘어섰다. 역시 농촌 빈집을 활용한 사업이다.

이처럼 빈집을 활용해 성과를 낸 사례가 알려지면서 지자체마다 빈집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빈집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 최근 인구감소와 수도권 쏠림현상 등으로 지자체마다 빈집이 증가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 빈집은 13만2000호로, 그 중 절반 가까이(6만1000호)가 인구감소지역에 있다. 도시 빈집은 4만2000호인데 비해 농촌 빈집은 6만6000호, 어촌 빈집은 2만3000호다.

올해 행안부가 추진 중인 빈집 정비사업에 79개 시·군·구에서 1663호가 신청했다. 빈집 철거·수리를 지원하는 지자체 보조사업이다. 행안부는 우선순위를 정한 뒤 이달 중 50억원을 배정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추가 예산 확보를 통해 사업대상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행안부는 또 빈집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소유주가 겪을 수 있는 불이익 등 각종 제도를 손볼 계획이다. 예를 들어 토지세가 주택세보다 높아 빈집을 철거할 경우 남겨둘 때보다 세금이 늘어나는데, 이 같은 불이익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빈집을 주거·관광·문화 자원으로 고쳐 쓰는 방안도 찾고 있다. 지난해에는 소멸대응기금을 지원받은 지자체 중 24곳에서 기금을 활용한 빈집 정비 사업을 추진했다. 충남 청양군의 ‘만원 임대주택’이 대표적이다. 청양군은 빈집을 임대해 정비한 뒤 월 1만원의 임대료만 받고 청년 신혼부부 귀농귀촌인에게 재임대 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모집해 단독주택 3채의 리모델링을 마쳤다. 4월 말에는 입주자를 모집한다. 올해까지 10세대가 목표다.

안승대 행안부 지방행정국장은 “빈집은 쇠퇴와 소멸의 상징이 되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행히 여러 지역에서 빈집을 활용해 성과를 거둔 사례들이 있는 만큼 이를 여러 지역으로 확산해 소멸위기에 놓인 지방에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김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