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대한민국을 인양하라' | ④정부 안전대책,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은 말잔치 … 기업살인법부터 도입을"

2015-04-17 12:39:50 게재

인터뷰 | 박두용 한국안전학회 부회장

"지난 1년간 말만 많았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7일 서울 한성대에서 만난 박두용(53·사진) 한국안전학회 부회장의 말이다. 그는 노무현정부 시절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을 역임한 재난방재 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정부는 참사 후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대대적으로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최근에는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내놨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1년 전과 밑바닥은 하나도 안 바뀌었는데 위에서 요란한 말잔치만 벌이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박두용 한성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 노동부 정책자문위 위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산업안전행정기능강화TF 위원 역임 사진 이재걸 기자

■지난 1년간 체감되는 변화가 있나

말은 굉장히 많았다.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정부가 내뱉은 그 많은 말들이 어디로 갔나. 공허하다. 상대가 없는 말이었다.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이 나왔다

검토해 봤다.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부분 옳은 얘기들이었다. 그러나 '맥락'이 없었다. '이게 문제니까 이걸 고치자' 하고 집어내는 게 없이 다 문제고 다 고쳐야 하니 다 노력하자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이 플랜을 보면 '모든 유형' '전 과정' '국민 다 함께' 식의 표현 투성이다. 옛날에 하던 '무재해 운동'과 비슷하다. 말이 그럴싸해 반박하기 어렵지만 사실은 문제의 초점을 흐려 진짜 문제가 뭔지 모르게 만들어 놨다.

■어떻게 접근했어야 하나

세월호와 이를 전후한 재난성 사고를 하나하나 놓고 문제를 따졌어야 했다, '세월호의 문제'가 뭐였냐는 핵심 키워드를 찾아냈어야 했다.

몸이 좀 안 좋은 사람에게는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라는 처방이 맞다. 그런데 이번 정부 대책은 암환자나 다리 골절 환자에게 똑같은 처방을 하는 격이다.

■정부는 재난을 예방하겠다고 한다

일상적 사고는 사회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일상적 대응 시스템으로 막는 거다. 반면 세월호처럼 일상적 대응 범위를 넘어선 사고는 예방이 안되니까 재난이라고 하는거다. 그런데 정부는 이 두 가지를 헷갈려 하고 있다.

■예방과 재난대응, 얼마나 개선됐나

세월호는 선박이 출항하기 전에 이미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걸 안 고치면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 그런데 재난이 나고 나서는 구조시스템이 없었다.

지금도 이 두 가지가 하나도 해결이 안 됐다.

지금도 평형수, 고박, 승선인원 체크, 구명정, 탑승시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출동시스템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해경 인원 늘었는지, 경비정 구조시스템이 확보됐는지 이런 게 수치로 확인돼야 하는데 아직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안전다짐대회'가 아니라 '안전보고대회'를 열었어야 했다.

■국민 안전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원인을 잘못 짚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 국민 안전의식 문제가 아니다.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펼쳐 보이며) 여기 보면 '일반국민에 대한 안전관련 교육홍보가 부족하다'면서 대구지하철 참사를 사례로 들었다. 전동차 비상개폐 방법을 시민들이 몰라 사람들이 죽었다는 말인데 기가 막히다.

당시 방화범이 1079열차에 불을 냈다. 기관사가 불을 못 꺼서 대피를 시켰다. 그런데 반대로 들어오던 1080열차가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차를 세웠다. 승객들에게 "잠시 대기중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다 정전이 됐다. 불이 번지고 정전으로 아무도 꼼짝 못하게 되자 기관사들은 키를 뽑고 승객들을 방치한 채 먼저 나왔다. 세월호 때와 판박이다. 기관사의 지시를 따른 승객들은 틀리지 않았다. 지시가 잘못된 거다.

세월호 때 직원들도 누가 학생들을 구했느냐. 교사도, 직원도, 물들지 않은 사람이 나섰다. 끝까지…. 안전교육은 이미 충분히 돼 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20년 전 사례로 교육부족을 들먹이나.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재난이 매일 벌어지는 게 아니고 가끔 벌어진다. 다른 나라의 경험이 중요하다. 선진국들은 누적된 경험을 토대로 대책을 수립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911 나고 나서 국민교육 강화했나. 영국에서 대형사고 나고 국민교육 했나. 아니다.

우리는 정작 고쳐야 할 법은 안 고치고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다.

안전은 혁신이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 없다. 기본(원칙)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들이 보편적이지 않은 게 많다.

국민안전교육진흥기본법 만들겠다, 안전기준등록 심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만들겠다…. 발상 자체가 굉장히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국민안전처는 제 역할을 할까

모든 부처에서 하고 있는 안전을 다 등록해서 관리하겠다는 건데 불가능하다.

법에는 기본 법칙이 있다. 보호법익. 이에 따라 주체를 관리하는 거지 객체를 관리하는 게 아니다. 관리 대상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과 조직이 무슨 책임을 갖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 건지가 핵심인데. 이걸 망각한 발상이다.

화학물질 기준을 만들어도 실질적 관리주체가 없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정책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위험도 '생산자'가 있고 '노출자'가 있다. 안전관리 핵심은 위험생산자에게 위험관리를 맡기는 것이다.

■'유병언법'이 그런 목적 아닌가

취지는 옳지만 처분이 '사후적'이라 현실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사고 벌어지고 나서 추적한다는 것은 너무 늦다. 대부분의 기업들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사람도 조직도 자기들이 사고를 겪을 것이라는 기대치가 낮으므로 위협이라고 생각 안 한다.

또 이렇게 법 만들어놓으면 빠져나갈 구멍도 생긴다. 등기이사 등록 안하는 식으로 책임 피하는 게 대표적이다.

■실효성이 있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예방 차원에서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를 할 경우 영업행위 자체를 막는 것이다. 영업중지 또는 작업중지 처분으로 경제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영업익을 몰수하는 과징금을 물리는 방법도 있다. 유사사례가 화학물질 관리법이다. 영업정지만 하면 제3자도 피해를 보니까. 급박한 위험이 지나면 영업정지 풀어주되 과징금을 몰수토록 돼 있다.

다른 하나는 기업살인법 도입이다. 조직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사람을 처벌하거나 조직을 형사처벌하고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특정 개인에게만 처벌을 하면 실효성이 낮기 때문에 법인에 대한 처벌이 어떤 식으로든 들어가야 한다.

■일반 주주가 피해를 보므로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형법에서는 범죄를 저지를 행위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책임질 능력이 있는지를 따진다. 영미법은 법인에 책임능력이 있다고 보고 대륙법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기업범죄라는 게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바지사장이 너무 많아 조직의 범죄를 다스릴 수 없다.

그리고 몇 사람이 의사결정 내렸는데 주주가 왜 피해봐야 하느냐는 건데 사실은 그래야 주주들이 감시한다. 특히 대주주. 조직에 처벌해야 실질적 대주주가 책임을 지게 된다. 현장 소장 처벌하고 공장장만 처벌해선 꿈쩍도 안 한다.

■교통사고는 개인 책임이다

사실이다. 순전히 개인의 행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조직에 의한 안전범죄는 개인을 처벌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게 추세다. 보통 사람이 어디 속해 있으면 개인책임으로 돌리기에 맞지 않다. 시스템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조직이 위험을 부추기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면 개인으로서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초점을 개인에게 맞출 거면 형법상 과실치사상으로 다스리면 된다.

안전관리법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이 있어도 따로 두는 것은 안전이 개인문제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전관리법이 적용된 사고가 별로 없어 보인다

대림폭발사고, 구미불산사고, 삼성, 현대제철…. 모든 사고가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처리됐다. 안전관리법이 유명무실한 상태다.

세월호 선장 물론 잘못했다. 변명의 여지없다. 그런데 출항할 때 고박 않고 평형수 빼고, 승선인원 확인 않고 한 것까지 이들에게 책임 물을 수 있냐면 그건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별도의 법이 더 필요한가

법은 이미 있다. 집행체계, 즉 손발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 법과 집행기관을 따로 놓고 볼 수 없다.

위험은 세 단계로 볼 수 있는데 단계마다 관리주체와 방식이 다르다.

먼저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잘못 만들어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검사와 인증을 한다. 한 번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상품을 잘 만들어도 두 번째 사용·소비단계에서 위험이 생긴다. 이를 책임지고 관리하기 위해 환경·식품·산업·교통·생활안전 5가지 부문에서 각 '청' 단위의 집행기관들이 상시감시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이 집행기관들에게 정확하게 역할을 주고 책임을 지게 하면 될 일이다.

■세 번째 단계는 뭔가

사고 발생 이후다. 크게 육상과 해상으로 나뉜다.

이 단계에서는 사고의 규모에 따라 보고체계가 위로 올라갈수록 집중돼야 한다. 911 때 뉴욕소방서장이 상황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게 이 때문이다.

우리는 가지뻗기 식으로 오히려 보고체계가 분산되는 형태다 보니 지난해처럼 우왕좌왕했다.

■사용·소비단계 위험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현재 감시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식품·산업안전도 음주·뺑소니 교통사고처럼 가중처벌 해야 하는데 조직에 대해선 하지 않고 있다.

위험관리는 교통사고의 예를 확대적용할 필요가 있다.

음주나 뺑소니처럼 정말 해선 안될 '나쁜 사고(위험)'를 하나씩 정해 가중처벌하는 거다.

선박사고의 경우 모든 걸 한꺼번에 고치긴 어렵다. 그러므로 승선인원·과적 허위신고, 평형수 빼기 등을 순차적으로 '나쁜 사고'로 규정, 영업정지 등 엄중조치를 해나가면 된다.

이건 온전히 정부 집행기관 몫이다. 정부는 안전교사를 만들겠다는데 교사가 선령 확인하나, 증개축 확인하나, 평형수 확인할 건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집행기관들이 제 몫을 하려면

각자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전문화하고 독립성·지속성을 담보해야 한다.

국민안전처는 5대 영역을 모두 섞어놓은 건데, 오히려 따로 분리시켜야 한다. 경계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협업이 이뤄진다. 애매하게 벽만 허물어놓으면 자기 정체성 가지려고 더 싸운다. 중복과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생긴다. 나중에 보면 뻥 뚫려 있고 어느 부분은 겹친다.

안전은 일원화가 불가능하다. 안전처가 다 할 수 없다. 서류만 왔다갔다하다 말 거다. 국민안전처를 왜 상시조직으로 뒀는지도 의문이다. 일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하는 참사 때문에. 각 재난별로 기구가 짜여져야지 위에 비대한 기구를 둘 필요가 없다.

■안전에 대한 국민요구에 정부가 못 따라오는 것 같다

약간의 혼돈상태다. 한편으로는 안전대책이 오히려 후퇴했다고 본다. 문제도 호도되고. 비대한 조직 만들어 말잔치를 벌일 게 아니라 각각의 기관들의 관리대책을 정밀하게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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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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